최초의 낭만은 어디에서 촉발되었나
어떤 목표는 너무 거대해서 나를 집어삼키고 어떤 목표는 현실에 나를 가만히 둔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행복하기만 해도 될 것처럼.
자의식 과잉일 때의 내 상태는 이렇다
스스로를 구원자나 메시아쯤으로 여기면서 인류의 과업과 원죄를 떠맡으려고 든다. 이 세계에는 희망이 없어. 그러니 내가 답을 찾아야 해. 다행히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떠돌고 그것은 조금 더 좋은 세상, 혁신적인 세상이 될 것처럼 속삭인다. 나를 속인다. 앞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게 만들다가도 때로는 죽고 싶게 한다. 과연
Nothing. 아무것도 아닌 나. 거기서 오는 자유로움.
나는 가끔 내가 외계인 같다고 여긴 적이 있다. 고차원적인 존재는 정말 오직 ‘재미’만을 위해 기꺼이 허접한 몸으로 육화하여 지구인들의 ‘인생’이라는 콘텐츠를 즐기고 싶을 것 같다고. 그것이 납득되는 내가 외계인인 것은 아닐까 하는 논지다. 인간은 정말 타고난 존재다. 느끼기 위해서. 너무나 다이나믹하지 않은가? 매일 똑같은 하루라도 미각 촉각 청각 시각 후각에서 느껴지는 수천개의 감각들, 별일 없다가도 갑작스레 생기는 별일들. 고통 슬픔 희망 사랑 외로움 정의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
이 세상은 콘텐츠의 홍수다. 영화만 해도 각종 OTT마다 장르별로 가득 찬 콘텐츠들이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게 하고 평생 영화만 보고 산다 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뤼미에르의 흑백 영화들부터 오늘 개봉한 영화들까지 그것만이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이야기하고 푹 빠져들고 오직 그것만이 목표가 된다.
책은 또 어떤가? 과학 철학 심리학 각종 학문적인 책 말고도, 삶을 펼쳐내는 에세이, 소설들. Sf에 이렇게 많은 작가가 있었다는 것이, 이런 문학상이 세상에 존재했다니,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책만 읽으라 해도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심지어는 ‘시’라는 분야도 있다. 문보영 작가가 말했다. 시 세계는 마치 해리포터의 호그 스미드같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들어가면 전혀 몰랐던 세계가 펼쳐진다고 말이다.
이곳에는 또 그림 한 점에 수천억이 오가는 미술 세계도 있다. 설치, 페인팅, 영상, 음악, 서울에 있는 메이저 미술관만 해도 10곳이나 되고, 분기별로 그곳들은 옷을 바꿔입는다. 적어도 한 달의 한번은 밖으로 나갈 이유가 된다. 또 어떤 작가가 미친 짓을 벌였을까. 어떤 메시지에 사람들이 탐닉할까. 어떻게 세상이 변하나. 이런 것들이 보인다. 전시를 보면, 이 세계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왔는지,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한대의 시나리오로 펼쳐진다.
나는 그것들을 생각하면 과거의 사람들이 부러워 미칠 것만 같다. 뒷걸음질 치지 않아도 당장 문밖의 영화관에서, 책방에서, 최신의 것들로 고전 명작들을 즐겨왔던 전 세대 인간들의 특권이. 그리고 미래 인간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영화관에서 어떤 사람들과 같은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었다는 것을. 그런 유유자적 하고 낭만적인 시간은 중첩되어 나를 미래로 데려갈 것이다.
더 이상 시네필 같은 호칭이나 왓챠 평점의 개수. 같은 것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나는 인간들이 만든 귀중한 재산들을 마음껏 훔쳐 가고 싶다. 죽고 나면 영혼에 새겨진 것들만 남을 테니까. 돈보다는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사람들과 술자리에 앉아있기보다는 나 홀로 영화관에, 시집을 듣고 있으면 나도 할 말이 너무 많아져 펜을 들게 된다. 그런 인생이 있기에 값지다. 벅차고, 매순간 충만해지는 법을 배워간다. 나의 목표는 아주 사소하지만, 언젠가 이 목표들이 타인들에게 와닿았으면 좋겠다.
우리 낭만 가득한 삶을 살아요.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거대한 목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