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13월로 가기 위해서

어른이 되어 잊어버렸던 그 여름, 보라카이

by 강하라



8월의 보라카이는 꿈만 같았다. 바람이 불어 야자수는 지하철 취객처럼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흔들었고, ‘우르르 쾅쾅’ 하늘이 미러볼처럼 깜빡였다. 콘크리트 천장이 쿵 하고 내려앉을 것 같은 부실공사 섬, 그것이 보라카이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꿈의 휴양지. 과연 꿈은 꿈이었다. 이것은 악몽임에 분명했으니까.


아빠는 패키지 여행 사기를 당했다. 그 돈을 나에게 맡겼다면 분명 저 옆으로 빰- 하며 지나가는 초호화 유람선에 탈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낚시 배만도 못한 크기의 쪽배를 타고, 까슬까슬한 나무 의자에 앉아 캐노피 하나 없이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비가 아니라, 사방에서 몰아치는 태풍이었다. 금방이라도 구명조끼에 목숨을 맡긴 채 바다 한가운데에서 둥둥 떠다닐 것만 같았다. 보풀이 일고, 색깔을 잃어버려 이제는 다 말라버린 핏빛이 된, 이름 없는 구명 조끼가 무사히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쓸모 없기 만을 기원하면서, 두 손을 모으고 저 하늘 뒤에서 팔짱 끼고 OTT마냥 이 광경을 지켜 볼 신들을 불러 제꼈다. ‘시발,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나서 이 화를 당장 분출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17살의 내 표정은 모두가 알다시피 너무 티가 나는 바람에 전염병처럼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있었다. 이 배에는 우리 가족 말고 커플 하나가 더 타고 있었다. 자세한 행색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는 타인에게 내 지랄이 들키지 않게 위해 “좀만 더 가면 돼. 너 좋아하는 새우 먹자. 가서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망고스틴 하루 종일 까줄게.” 하는 달래기 스킬을 썼고, 섬으로 가는 짧다면 짧았을 구간이 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반복되었다. 배는 휘청이고, 멀미가 나서 토할 것 같고, 아빠의 무지함이 지독히 원망스럽고, 바깥을 바라보면? 이 곳에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무 갑판에 당당히 올라서 마치 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두 손으로 노를 꽉 쥐고 태풍에 맞서서 앞으로 전진하는 어떤 사람. 너무 밝게 웃고 있어서 순간 눈물이 났다. 나는 이 벅찬 감정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 한순간에 내 자신이 한심해졌고 부끄럽다는 감정을 깨달아버렸다. 이건, 동정이나 연민이나 한국인이 개발도상국 인간에게 갖는다는 그따위 하등한 감정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우는 나를 보면서 “역시 우리 애가 지랄 맞지만 마음씨는 착해” “이따가 아저씨한테 팁 드려” 하면서 10달러를 주었고,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이 쪽팔림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심지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사히 도착한 후 감사의 의미로 아저씨에게 10달러를 전해드리는 일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배가 정박함과 동시에 나무 판자를 배와 육지 사이에 덧대고 내게 손을 내미는 그 아저씨는 몰래 드린 10달러를 주머니에서 1달러 지폐들로 바꾼 다음에 동료들과 나눠 가졌다.


나는 그 아저씨가 부럽고, 존경스럽고, 대단하고, 멋지게 보여, 아니, 아직 부럽지는 않지만,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는 말에 당연하게 적었던 ‘미래의 나 자신’ 칸을 박박 지우고 그 아저씨의 이름을 새겨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느낀 ‘존경’의 대상은 자신의 일을 기꺼이 (기꺼이라는 말은 어쩐지 시혜적이고 짜증난다)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행복해하는 사람? 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장을 노력하는 사람 한 줄로 퉁 쳐서 내 삶의 지표로 삼았다. 그러니까 나는 짱 멋지고, 대단한 인물이 될 테니까… ‘노력하는 사람이 잘 사는 사회’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왜 이 자본주의는 이토록 불평등할까. 왜 노동을 하는 사람과 노동의 가치를 얻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을까. 왜 어떤 태어남은 모든 것을 결정지을까. 왜 나같은 애는 징징거리고 저 사람은 웃을까. 지금의 납득가능한 나의 세계관이 정립되기 전에, 나의 삶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까 의문만으로 A4용지 10장을 거뜬히 채우고, 천국에 붙일 거대한 대자보가 완성될 수 있을 정도였다. 왜 나에겐 지구정복의 가능성이 있고, 저 사람에겐 없을까. (이 말은 논리적 모순이다. 그냥 나는 자의식 덩어리여서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하등 인간이라는 나우월주의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여주면 좋을 것 같다.) 야망 빼면 시체 – 일명 ‘야빼시’는 나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단어다. 그래서 슬픔은 용납 할 수 없었다. ‘절망’ 이라는 자리에 패기와 혈기를 집어넣었다. 그래서 열일곱 나에겐 목표가 생겼다. ‘이 엿 같은 자본주의를 뒤흔들고 정의를 바로 세우자!’ 라는. 나는 슬로건을 머리에 두르고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비밀이어야 했고, 그 비밀은 아직까지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첫번째 원칙은 그거였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자본주의의 은밀한 원리가 너무 좆같았다. 지하철에서 기부를 독려하는 사람의 주 타겟은 20대 여성이었고, 그들은 한번쯤 등록금에 허덕이거나 월세가 밀려본 경험이 있고, 간신히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이어나간 적이 있을 것이다. 가난을 공감하는 사람들은 가난에 슬퍼할 줄 알고 타인에게 기꺼이 손 내민다. 그러니까 동정심, 연민, 이런 감정은 자본주의 매트릭스의 기반이 된다. 대기업 회장들은 허허 웃으면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니, 관심조차 없겠지. 그러니까 눈물이 지갑을 열게 하면 안된다. 자본주의를 역이용하자! 나는 개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온갖 분야의 프랜차이즈를 열어 전 세계를 휩쓸고, 그 돈이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가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었다. 시스템. 지속가능성. 그것이 그때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사실은 ‘전쟁 통에 아이들이 더 많이 태어난다’는 인간의 본성이었고, 오늘 태어난 아이까지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내일 태어나는 애들은 장담할 수 없다는 한계였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기부를 하면 할수록 기부하는 주체는 행복해지고 대상은 필연적으로 불구가 된다. 나는 기부라는 게 정말 아이러니했다. 용돈의 반을 어린이 재단이나 아프리카에 기부하는 것으로 착한 어린이의 꼬리표를 받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 나는 언젠가 아너 소사이어티의 일원이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유의미한 액수의 돈을 그때 그때 시사성 있는 곳에 기부해야지 하는 생각을 남몰래 품고 있었다. 사실 기부라는 건 ‘언제 끊길지 모르는 랜덤의 선의’. 그러니까 인간의 기우제 같은 비이성적 행위를 초래하는 저주 같은 것, 이라고도 표현될 수 있었다. 극단적인 말이지만 사실일 것이다. 이 세상은 마치 삼류 과학자가 오래도록 방치한 녹슨 타임머신 기계 같았다. 철저하게 실패한 나머지 뒤로 돌릴 수도 없고 미래로 갈 수 없으며 그저 순간으로 흘러갈 뿐인. 그러니까 톱니 바퀴 하나하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NGO 단체도 믿을 수가 없고… 이렇게 대상 하나하나를 논하기엔 모든 것이 썩어버려서 나 자신을 없애야 하는… 아이러니를 보게 되었다. A를 투입하면 A'가 튀어나오는 상자는 수학 시험 문제 속에나 있었으니까.


사실은 납득이 간다는 것이 문제였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인간들은 그러니까 운이 극도로 없어져서

내일 당장 노숙을 할 상황에 처한다면 온 몸 멀쩡하게 살아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것이다. 이건 비단 ‘잘못’ 태어났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그 어떤 부자들도 맘 편하게 손 놓고 있지 못하는 이유다. 자꾸만 그들이 자식들을 위해 재산을 축적하고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그러는 이유도 같다. 현실이란 지옥에 최저선은 없었다. 지옥 아래에 지옥이 있다. 자신들이 멸시했던 인간이 자신의 미래가 된다면… 자신이 손가락질했던 대상이 자신의 미래가 된다면… ‘나는 평생 그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대비를 한다.’ 이 마인드인 것이다. 차라리 그 힘으로 모두를 위한 최저선, 그러니까 최소한의 복지, 기본값 그런 것을 높이기 위해 애쓴다면 좋을 텐데… 사실 인간에겐 우월감이 가장 중요하니까… 자신보다 사다리 아래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위안하고 자신의 삶을 견디니까… 아마 나는 평생 가도 이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는 정녕 없는 것일까? 아아… 청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현실이었다. 그래도 한번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곧 죽어도 시도는 해봐야할 것 같았다. 그게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고. 그러니까 2015년 일기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거대한 매트릭스를 풀 수 없다면 작은 균열이라도 내보자. ‘전복’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아무도 그 답을 모른다면 내 방식대로 부딪혀보자.


나는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을 훅 빼앗는 노래를 만들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훅 빼앗는 글을 쓰고, 사람들의 마음을 훅 빼앗는 공간을 만들 것이다. 그 공간이 커지고 커져서 그들이 두 발 붙이고 직접 살아가는 곳이 될 것이다. 집이 되고, 짐을 나누고, 각자가 잘하는 것, 각자가 제일 하고 싶은 일 (심지어는 자기도 몰랐던) 그런 일들을 해볼 수 있게 만들고, 그런 일이 가치를 창출하게 할 것이다. 또 알아서 그 가치가 다른 이에게 나눠 지게끔 만들 것이다. 나는 기술이 이런 일에 쓰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기술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낙관을 품는다. 내가 꼭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런 꿈에 부풀다가도 나의 한계를 마주하게 되면, 또 사람들의 욕망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이 모든 건 불가능한 일이다.


2015년 비트 코인에 대해 파고들었던 것은 딥 웹에서 아동 성착취물이나 온갖 더러운 일들을 가상 화폐로 사고 파는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세상 모든 게 궁금했고, 알아야 했으며, 네이버와 다음에는 없는 정보를 찾아 헤매다가 니콜라 테슬라도 알았고 온갖 음모론도 알았고 코인이 미래인 세상을 봤다. 나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대의 한 국면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설명해줄 수 없을 때 블록 체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구성 원리는 간단했으니까. 모든 것이 기록되는, 투명한, 기술, 이라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이런 일에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 같은, 시스템. 1. 인간이 필요치 않음, 2. 인간을 위해 쓰임. 이 두가지가 기본 원칙인 어떤 것. 온 힘을 다해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죽으면, 어느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도 계속해서 가동될 테니까. 나는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없을까 해서 많은 사람들을 찾아봤지만 그들은 전부 남자였고, 코인 다단계를 꿈꿨고, 어떤 사람은 네가 준 정보로 청담동의 집을 샀다고 했다. 나는 돈이라면 너무 싫어서, 세상 모든 돈을 다 가진 뒤에 다시 분배해주고 싶었다. 컴퓨터 속에서 한 순간에 집을 샀고 집을 잃었다. 나도 환호했고 절망했고 슬펐고 괴롭고 기쁘다가 모든 것을 토해냈다. 몇 년 뒤에 코인 붐이 일었고 나는 정말로 지긋지긋했다.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또 무슨 정보 없냐고 물었고, 아빠는 매주 토요일마다 내게 로또 번호를 묻는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뿐이고, 하루는 24시를 반복하며, 12월이 지나면 다시 1월이 된다. 메시아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면 B.C와 A.C를 지나 C.C 1년쯤 될까.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법칙들. 때때로 그것들에 순응하고 만다. 사실은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그것들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일까? 내가 모든 것을 가졌을 때 욕심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나를 못 믿고, 신도 나를 못 믿으니 이 거래는 영원히 성사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히든 맵도 있다. 세상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정말로 나만을 위한 유토피아. 아무도 불쾌하게 하지 않고, 세상에 반역하지 않으며, 자연의 순리대로 살다가 죽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삶. 인생에 목표가 있다면 현존하는 모든 책과 영화, 드라마 시리즈를 다 보고, 역작이라 불리는 게임도 다 하고, 인간의 몸으로만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온 감각으로 즐기는 게 다인 삶.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시골에 내려가서 예쁜 집을 짓고 마당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심고 하루의 일과라고는 식물에 물주기가 다인 삶. 그런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던지 이제는 신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될 대로 돼라. 야망은 있고, 계획도 있는 이 청년을 자연에 둘 것인가, 속세에 둘 것인가.


주사위를 굴리는 것은 자연의 몫. 우리가 13월로 가기 위해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까. 그래도 어떤 모습의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는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글을 많이 읽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 꼭 유토피아를 품고 있으니까. 나는 매일 더 멋진 유토피아를 마음 속에 가꾸다가 언젠가 사람들을 초대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지극히 정치적인 일이 된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사회에 뛰어들겠지. 불을 지르고, 누군가의 목을 매달고, 삶이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으면서도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상상해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꿀까. 우리의 유토피아가 겹치는 부분은 어딜까, 얼마나 다양한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지겹지만 세상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는 당신에게,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 1. 야망을 잔뜩 넣은 완벽한 계획을 세운 뒤 나머지는 신의 몫이라고 떠넘기기 2. 계획이 실패할 때의 행복한 삶 계획하기 3.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중도의 마음으로 살기 4. 어떤 세계관에서도 기죽지 않고 할 말 하기 5. 사후 세계를 생각해 적당히 아부 떨기


그러다 보면 신은 결국 내 편이 아니라도 내 편이 된다. 주어를 우주로 바꾸거나 세상으로 바꿔도 해당이 된다. 엿 먹어라 하면 감사해요^^ 엿 좋아합니다! 하고 받아 먹기. 나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좋다. 나는 여기 저기 실컷 미움 받아서 떡 먹고 배부를 것 같다. 이러니까 꼭 해탈한 것 같아서, 불교에서도 예쁨 받을 것 같다. 시간이 나면 제 3의 눈 뜨는 명상을 하고, 채널링 하는 법을 찾아보기도 한다. 귀신이 눈 앞에 나타나면 정성껏 귀기울이겠지만 나같은 물음표 살인마에게 걸려 귀 아프다고 도망갈 것 같다. 나는 별거 아닌 일이라도 기분이 좋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린다. 밝고 행복하게 사는 게 좋다. 억지로 웃으면 스스로의 가식적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 교회에 나가고, 목사님과 친분을 유지한다. 어릴 적 ‘하나님이 찐이면 죽기 3초전에 맹신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한번 한 기도는 무조건 들어준다고 하니까, 이 기도는 아마도 천국 프리패스권이 아닐까. 어떤 세계관에서도 아방방하게 살아남기. 지랄맞은 청소년은 영악한 청년이 됐다. 여전히 배가 고프면 지랄 맞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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