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늘 하루는 어때?
아침에 눈 뜨기가 싫어 악몽을 복기하는 건 아닌지 궁금해. 오늘의 나처럼 말이야.
꿈속에서 나는 가족들과 차에 타고 있었어. 차는 시속 180km로 달리고 있었고, 바람이 문 틈새로 미친 듯이 스며들었지. 마치 세상 끝으로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어. 왼쪽에서는 아빠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엄마는 옆자리에서 불안에 찬 목소리로 뭐라도 하라고 소리쳤어. 나는 그 둘의 사이에서 두 문짝을 양팔로 붙잡고 있었는데,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숨을 참았어. 세찬 바람이 내 목을 조르는, 이러다 죽을 것만 같은 어딘가 달콤한 기분.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들이밀 때의 느낌을 기억해? 그러고 나면 어딘가 딴 세계로 납치될 까봐 내심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이 왠지 짜릿했잖아. 그 감각이 좋을수록 무섭고. 그 세계의 나 역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곧 뒷자리로 넘어와 침착하게 안전벨트를 맸어. 그리고 무심한 기도를 했어.
죽음이 나의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소서
기적이 나의 운명이라면 그것 또한 인정하게 하소서
차는 더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고, 난 평온하게 절망 한가운데에 서 있었어. 모든 걸 포기했는데, 그게 오히려 나다웠어. 어린 시절 내가 생각하던 나의 정반대 나.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미래적인 나. 그러다 장면이 휙 바뀌었어. 나는 혼자 식당에 있었고, 식당 바닥부터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지. 아마 이곳은 LA 어느 해변의 모래 위에 지어진 것 같아. 식당의 풍경은 속초 어느 골목의 낡은 백반집 같았고. 내 앞에 어떤 음식이 있었는데 무슨 메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다만 ‘맛집이었다’는 사실만 선명해. 국밥이었을까?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해. 밖에는 사람들이 웨이팅 줄에 서 있었고, 나는 묘하게 뿌듯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내 앞에 내 몫의 음식이 있다는 것. 그게 꿈 밖의 나에게도 전해지더라. 웃기지? 바닷물이 내 허리까지 차오르는데도, 젓가락을 들고 멈춘 자세로. 찰칵.
어떻게 그것들이 같은 장소로 공존할 수 있을까? 지금 적고 있는 이 문장들은 내가 바라본 것들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야. 하지만 자꾸만 자신을 배반하고 자신들을 덮어 씌우면서 충돌해. 그리고 나는 어쩌면 이런 꿈들이, 그가 묘사하는 것이 아마도 나의 비유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꿈의 장면들은 에에올의 장면들처럼 순식간에 빠르게 전환되었어.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내 무의식들을 관통하고 있었지. 아마도 요즘의 나는 꽤 외롭고, 지쳤는지 몰라. 기대했다 실망하는 버릇을 ‘실망병’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미 불치병 환자겠지. 이런 게 인생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 걸까?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해서 보기 미웠던 내가 욕심을 내려놓고 맑게 웃는 것. 완벽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가사를 보내는 것. 조용한 메신저 창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꽤 자연스러워. 생각보다 이미 벌써 어른이 되어버렸는지도.
꿈속의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도 마주쳤어. 하나를 안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어느새 어린 나로 바뀌어 있었어.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나. 사진 속의 얼굴과 배경으로 추측했을 뿐인 나의 기억. 그러고 보면 다 희안하지 않아? 어떻게 우리는 기억을 확신할 수 있었던 걸까? 기억이란 도대체 뭘까. 상상과 추억의 경계는 어디서부터 일까. 증언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오로지 나만 가진 기억의 파편들은 시속 몇 킬로미터의 속도로 흩어질까. 어쩌면 기억은 증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허구일지도 몰라. 나는 이제 그 모든 기억을 상실한 채, 내일을 향해 다시 걷고 있어. 기대되기보다는 오히려 무감각해. 하지만 조금씩 감정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을 기쁘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아.
그런데 잠깐, 기쁘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지? 꿈속에서 내 표정은 끝내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야. 웃지도, 울지도 않았어. 그 무표정한 얼굴은 있지, 이목구비가 삭제된 마네킹 같았어. 그건 꿈의 한계일까? 얼굴 없는 한 인물이 내 꿈 정가운데에 놓여있는데, 매번 난 그게 나라는 걸 단박에 알았어. 언니는 이런 문장을 홀로 중얼거리는 나를 안쓰럽다고 느낄까? 반면 내가 불쌍하진 않았지. 오히려 그는 내가 아주 오래 뭉근히 바라던 감정의 형태를 닮아 있었으니까 말이야. 잔잔하고, 단단하고, 어떤 것에도 감히 휘둘리지 않는. 평온함. 평화.
쨍한 푸른색 하늘과 영원히 가시지 않을 듯한 잿빛 하늘, 그 중에 어떤 게 더 언니의 표정 같아? 진짜 나라는 건 너무 허무해. 매 순간은 다음 순간을 배신하고 도망치니까 말이야. 어릴 적에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한 손엔 바통 세게 쥐고 달리던 이어달리기처럼. 잔뜩 긴장하다가 잠깐 방심한 틈에 과거의 나는 등을 찰싹 때리면서 “이젠 너의 몫이야, 훔친 것처럼 달려.”라고 말하지. 그리고 그때의 다리는 순식간에 길어지고, 피부에 주름이 생겨. 일기장의 8개월은 순식간에 건너뛰어지고, 그 순간 나는 스치듯 나를 목도해. 목도한 순간 그는 사라져.
뜨겁게 식는 커피, 귀를 펼치고 달려오던 강아지, 비에 젖으면서 마르는 운동화, 낙엽을 밟을 때의 소리와 색깔, 창문에 맺히면서 추락하는 물방울, 산책 중 마주친 고양이 눈빛과 신호등, 귀를 스치던 내 이름, 삶이란 어쩌면 그 무수한 찰나의 반응들이 아닐까. 나라는 존재는 그때마다 잠시 지은 모나리자의 애매모호한 스마일뿐이고. 우리는 이 거대한 매트릭스에 끝없이 적응하며 살지. 때때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역행해야 이로부터 자유로워질지 골몰하면서. 그런데 생각해 보면, 도망칠수록 더 예측 가능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아닌가, 대부분의 인간은 도망칠 용기를 내기 전에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떠올리지 못할 지도.
Over Thinking
Too much thinker
생각을 경계하라는 수많은 조언 속에서 다만 이런 생각들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 줄 텐데 말이야.
어젯밤엔 복제체를 소재로 한 sf 소설을 읽었어. 언니는 그런 소설들의 반전을 눈치챌 수 있어? 복제체는 과연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 복제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독자들은 그가 더 이상 ‘복제체’가 아닌 하나의 ‘주인공’으로 자리하는 걸 받아들이게 되지. 나는 그 서사가 인간의 본질을 닮았다고 생각했어. 끝없이 의심하고, 고백하고, 쓰고,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존재. 우리는 그 과정 자체에서만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허상의 생명체일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은 욕망을 잠시 멈춰보기로 했어. 내 욕망이라는 것을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말이야. 하고 싶은 대로만 살자 다짐했는데 이 마음 속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당췌 모르겠어서. 나는 어젯 밤 스치듯 본 친구가 SNS에 올린 음식 사진을 보고 그것이 내 욕망이었을까 착각한 것 같기도 해. 고기를 위해 살지만 고기를 혐오하는 것 같기도 해. 먹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염증 시스템을 재활성화한다면 가라앉은 것들 속에서 홀로 부유하는 무언가가 있을까? 그리고 그게 진짜 내 욕망인 걸까?
나는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어. 인간으로서의 본능적인 요구를 잠시 배반하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건 어쩌면 우주의 뜻일지도 모르잖아. 삶이 계속되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증거. 물론, 단순히 귀찮아서일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해 단식하는 것과, 나를 위해 정성스러운 한 끼를 차려먹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진짜 나를 위하는 걸까? 그건 매번 다를지도 몰라. 그리고 그게 세계의 정답일 지도 모르고. 우리는 정답을 믿을 수록 정답을 배신하게 되지만, 정답 바깥으로 튀어나갈 수록, 그를 반역할 수록 정답에 더 가까워질 테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전혀 다른 인간이니까. 웃기게도 그 변화 자체가 우리를 살아 있게 해. 아마도 나는 그걸 받아들이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몰라.
재밌지 않아? 진리도, 과학도, 신념도 전부 변하게 될 거야. 진지한 얼굴로 절대적 진리를 말하던 학자들이 몇십 년 후엔 또 다른 학자에게 반박당하는 걸 봐. 메가도스가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고 알고리즘이 유튜브를 지배했다가 비타민 C 과다 섭취가 장기를 해친다는 동영상들로 곧 바뀌지. 그런 식의 내 마음,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 그게 싫으면 기꺼이 허언증 환자가 되는 거야. 팔짱 끼고 한발 물러서면 이 세상은 재밌는 것들 투성이야. 안 그래? 역시 힘 빼는 게 답인 것 같지. 잔뜩 힘주고 인생에 대해 논하다 보니 인생이 별거 없어졌어. 그래서 자꾸 킥킥 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