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문장, 그 사람의 인생, 그 사람의 사랑. 그래, 그 사람
가끔 서점에서 무방비하게 펼쳐 든 책 속에서 너무 좋은 문장을 만나면, 묘한 반발심이 먼저 고개를 든다. "이런 건 나도 쓰겠는데?" 싶은, 참으로 오만한 착각 같은 거 말이다. 너무 좋은 건 때로 너무 당연해 보여서, 그 문장이 품은 깊이를 가늠하기 전에 질투부터 앞서게 된다. 비로소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그 쉬워 보이는 문장 뒤에 숨겨진 아득한 시간의 무게를 깨달았을 때다.
내 눈높이까지 무릎을 굽히고 다정하게 머리칼을 쓸어주는 사람들. 언제나 만만해 보이고, 외로울 땐 기꺼이 곁을 내어줄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 나는 그런 어른들에게 괜히 틱틱거리고 짐짓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그들의 호의가 쉬워 보여서, 혹은 그 다정함이 내 지질함을 비추는 거울 같아서. 하지만 실은 그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키 큰 어른이 되면 당연히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너그럽고 만만한 넓은 품이 나에겐 여전히 요원했으므로.
이제는 안다. 그 단단함은 삶이 뿌리째 흔들려 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균형감각이라는 것을. 슬픔, 괴로움, 인생의 무력함... 그 질척이는 감정의 늪을 건너본 사람만이, 그걸 딛고서 기어이 살아내는 마음을 획득한다는 것을. 그들의 다정함은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매일 아침 해가 뜨면 부지런히 몸을 일으켜 이불을 개고, 시든 화분에 물을 주는 지난한 습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이들에게 무릎을 굽혀 눈을 맞추는 그 다정함은, 자신의 무릎이 닳도록 세상에 부딪혀본 사람만이 베풀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의 배려였다. 누군가의 아픈 상처 이야기를 들을 때, 대신 찌푸리는 그 미간의 깊은 주름은 그들이 마주 잡은 손들로 인해 닳고 닳은 손바닥의 지문같은 흔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도서관 낡은 열람실 구석에서, 또는 광화문 서점의 거대한 인파 속에서 수많은 타인의 일기나 편지들을 훔쳐봤다. 활자로 인쇄된 그 편지들 속에는 그냥 새소리, 바람 소리, 들꽃 냄새만 풍기는 게 아니었다. 내가 배운 낭만과 사랑, 산뜻하고 달콤한 문장들이 아니라 여름 장마가 끝난 뒤 젖은 흙에서 올라오는 비릿하고 서늘한 냄새, 새벽녘 창틀을 흔드는 건조하고 높은 바람 소리, 이름 모를 들풀이 발목을 스칠 때 나는 까슬한 감촉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 글들은 내 품에 한아름 꽃다발을 안겨주곤 했다. 너에게도 이런 꽃다발이 생길지도 몰라, 그런 음성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치 그만의 정원으로 초대받은 것 같은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나만의 정원을 꾸려보고 싶어졌다. 누군가 놀러올 때 잔뜩 흙냄새가 풍기는, 야생화를 흰 레이스 리본으로 엮어줘야지 라는 다짐도 했다.
나는 이제 그런 글을 쓰려면, 그런 사람이 되려면 무수한 시간이 더 필요하단 걸 알아버렸다.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일부러 틱틱거리던 사춘기의 골목을 지나, 나는 이제 겨우 그들이 가꿔놓은 정원 앞에 섰다. 쉽게 쓰인 듯한 그 한 문장을 훔치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자신의 문장을 심고 가꾸었을까 하는 아득한 경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문장 너머의 경험을, 그 마음의 질감을 감히 흉내라도 내보려 오늘 밤도 나는 스탠드 불빛 아래서 조용히 연필을 깎는다. 정원의 삐쭉 튀어나온 잔디를 깎듯이.
어쩌면 당신에게도 그런 문장이, 그런 사람이 있겠지. 훔치고 싶을 만큼 부럽고, 닮고 싶어서 질투가 나는. 때로는 미웠고, 닳고 닳게 미워하다가 실은 좋아한다는 걸 언젠가 인정하게 되었던 그런 글이 있었을까? 왜 모든 마음은 양면이 있어서 인정해버리면 참 쉬운데 그게 왜그렇게 어려웠을까. 어쩌면 질투나 미움이 실은 우리를 가장 멀리 데려다줄 동력이었다는 걸 오늘이어서야 인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