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송도 가는 버스 서는 데죠?"
저녁 7시를 조금 넘겼을 때,
한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물으셨다. 낯선 동네 도로에서 가만히 버스 기다리는 게 어색했던 나머지
'개를 찾습니다' 컬러프린트 전단지가 나붙은 걸 까마득히 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것 같은데, 저도 초행길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M6405 맞죠? 저번에 보니 바닥에 쓰여있던데.."
바닥에는 빨간색의 꺾인 화살표밖에 없었다.
"저도 잘 몰라서.. 여기서 타면 되지 않을까요?"
"저번에 탔을 때는 바닥에 번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반대에서 타야 했고,
반대편에는 바닥에 번호가 있었다. '할아버지 기억이 맞았네.' 싶었다. 부랴부랴 길을 건너 줄을 섰더니
세상에나 연말이라 그런지, 만석이었던 광역버스들은 몇 대나 번호판을 끈 채 그 자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뛰어서 움직였기 때문에 자리 남은 버스가 얼른 도착했더라면 아마 그 길로 할아버지와는 '안녕'이었을 텐데, 한참 뒤에 도착하신 할아버지와 다시 마주쳤을 때 왠지 모를 허탈감마저 느끼던 와중,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아가씨죠?"
순간 나는 당황해서 "네?" 하며 웃었다. '요새 아가씨의 기준이 뭘까'싶게 당황했다. 그 정도로 어려 보이진 않을 텐데.. 염색한 적 없는 흰머리가 왼쪽 이마 위에 스물네댓 개는 보이는 나인데, 어두워서 잘 안보이시나.. "아유 저 나이 40이에요. 애들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84."
"에에?? 정말로 그렇게 안 보이세요. 진짜 정정하시네요." 진심이었다. 얼굴에 검버섯 하나 없는 84세 노인이라니. 내 기억 속 친할아버지의 70대보다 더 건강한 느낌이었다. 안경도 안 쓰셨는데 눈빛이 반짝이고, 걸음이 휘청이지도 자세가 구부러지지도 않은 노인이라니.
노인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이내 입을 여셨다.
"반포 살다가 얼마 전에 팔고 송도로 왔어요. 아들이 인천대 교수가 됐거든."
아아. 다른 것보다 인천대라니, 이 반가움은 뭐지.
"국립대 교수님이라니, 진짜 잘됐네요. 세상에.."
"그래요? 잘 된 건가.."
나는, '세상에 얼마나 자랑스러우실까, 내 자식이면 업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싶을 일!!'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은 '충분히 뿌듯하기만 하기에는 복잡한 일들을 지나왔다'는 얼굴. 자식일에 충분히 고민하고 조심해 오신 모양새였다. '맙소사.. 자식이 다 장성하고 충분히 잘 됐는데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건가'싶었지만 분위기를 무거운 색으로 덧칠하고 싶지 않았다.
"저희 아이 3년째 인천대 다니고 있거든요. 이번에 사사과정이라, 교수님 한분에 조교님 두 분이 일 년 동안 옆에서 정말 애써 가르쳐 주셨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천대, 교수'라는 말에 반가움이 앞서, 너무 많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나도.. 교수하다가 20년 전에 은퇴했어요. 애들이 있다고요? 몇 살이에요?"
"중3이랑 초등학교 5학년요."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고는 아이들 나이를 두어 번 더 물어보셨다.
뭔가 그때부터 생각이 많아지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