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할아버지는 멈췄다 질문하기를 반복하셨다. 집 가는 경로는 짧게 여러 번 이해될 때까지 물으셨고, 사적인 이야기도 오갔다.
나는 그날 처음 설치해 본 카카오맵을 통해 할아버지께, 몇 번 버스는 몇 분을 기다려야 하고, 좌석이 실시간으로 변동되며, 만석이라 방금 지나친 것 같습니다, 1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계속 이런 상황이면 조금 멀더라도 다른 경로가 이러이러하게 있어요를 설명드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할아버지는 자신의 폴더폰을 보여주시며, 이런 것 검색이 안 되는 핸드폰임을 설명하시곤, 자신이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물어보시는 게 아님을 보여주셨다.
버스가 몇 대나 그냥 지나쳤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한 번에 가는 M6405는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생각했다. 16년간, 내 20-30대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자녀 양육에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엄마'인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앞에 서니 그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 16년이 짧게 느껴졌다. 한순간에 나는 숙연해져서, 무슨 말을 할까 하다 말해버렸다.
"자식을 어떻게 그렇게 잘 기르셨어요."
나는 빈말처럼 들릴까 조심하면서 물었다.
할아버지는 몇 번을 말할까, 말까 고민하셨다. 나를 보고 허공을 보기를, 숨을 끌어다 입안에서 멈추기를 반복하시다 입을 여셨다.
"중학교 때가 제일 힘들어요. 초등학생은 그냥 놔둬도 될 나이고 고등학생은 자기가 알아서 할 나인데, 중학생은 공부를 놔버리지 않게. 손 놔 버릴 수가 있으니까.."
"맞아요. 중학교 3년 지내보니 정말 힘들었어요.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눈 부어서 학교 가고.. 쉽지 않았어요. 이때 포기하지 않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해 주세요. 그게 제일, 제일 중요해.. 원하는 거. 하고 싶어 하는 거."
이 말은 세 번쯤 반복하셨다. 말하실 때마다 과거의, 아버지였던 자신과 아직 다 크지 않았을 자녀분들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말이 느려졌다가, 시선이 흐려졌다가를 반복하는 걸 보면 느낄 수 있었다. 왜 갈등이 없었겠는가. 왜 고민이 없었을까 말이다. 그 험난한 리듬 속에서, 성장과 진통의 씨실과 날실을 얼마나 엮었을까 말이다.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을, 우리 아이들 나이에 맞춰 떠올리려 노력하셨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어둡지 않았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이 때때로 가볍지 않았으리란 걸 느꼈다. 할아버지는 의외로 귀도 밝으셨다. 어떻게 그 연세에 그렇게 잘 들으시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목소리도, 큰 소리가 아닌데 힘이 느껴졌다. 2B연필로 꾹꾹 정성 담아 써 내려가듯 말을 하셨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숨 찬 느낌이나 뭉개진 발음 하나 없이 또박또박 이어가셨다.
"우리 아들은 연대 나왔어요. 사시 보는 쪽으로 시키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안 됐어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더라고. 동경대 나와서 이렇게 됐지.. 우리 딸은 이대 정보통신학과 들어갔다가 약대로 바꿨어요. 중간에 진로가 한 번은 바뀌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길 찾아가더라고요.."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낯선 버스정류장에서 짙은색 경량패딩을 걸치고 베레모를 눌러쓴 채 갑자기 나타나 말 건넨 노인이, 실은 길 가다 마주쳐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가능성이 별로 없는, 그런 분이라는 걸, 순간 느껴버렸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긴 시간을 관통하는 지혜가 한줄기의 빛이 되어 내 몸에도 닿고 있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진로 변경'. 먼 일일지도 모르지만 선택의 기준은 아이에게 있으며, 중간에 진로가 바뀔 수도 있음을 인지하기.
하지만 내가 낯선 이에게 듣고 싶지 않았던 평범한 질문도 이어졌다. 대답하는 순간 '나는 평범하지 않습니다'를 굳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무슨 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