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끌어올리는' 비교.
'비교'.
한국사회 성장의 마중물이었다가,
언젠가부터 부정적 감정의 대명사가 된 말이다.
비교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따위를 고찰(깊이 생각하고 연구함)하는 일'.
'비교하지 마' '비교당했어' '그런 식으로 비교하니깐'
이런 말들에는 스트레스가 묻어나 있다. 비교는 '수동'이 될 때 감정을 상하게 한다. 비교가 수동이 되면 '끌어 내려지는'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방어모드로 무장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비교를 '능동'으로 바꾸는 순간, 상태를 보는 태도가 달라진다. '스스로, 상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번갈아 보면서 통찰하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한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관찰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다. 배우는 사람의 기본기이기도 하다. 비교를 능동적으로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끌어올리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예를 들면, 나는 나와 훌륭한 어머니를 아주 오래전부터 비교해 왔다. 좋은 엄마를 두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객관적인 상황'에서도 그런 모습을 마음 깊이 동경했다.
그랬다. 누군가 나를 끌어올려주기 바라기 전에, 나는 스스로를 끌어올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시선에는 늘 '동경'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열등'의 표현이 된다는 '감탄사'를 그렇게 썼던 것 같다. 열등한 존재로 비칠까 두려운 마음보다 스스로를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오~~' '이야~~~ '
동경은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린다(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나의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한 무언가를 받았을 때에, 뒤를 보면, 동경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무언가를 관찰하고 비교한 시간들이 있었다.
'너는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니 너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하지 않는다'는 시선 속에서도 나는, 그렇게 여기까지 걸어왔다. 아무도 나에게 결혼을 잘할 거라고, 아이를 잘 키울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스로는 기대했던 것 같다.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 때때로 주어지는 한계를 항상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만, 넘어질 때에도 '동경'하고 '비교'한 시간들은 그렇게 쌓였다. 누군가는 지켜보기 불편했을 감탄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