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오늘 마지막으로 뵙겠습니다
일정이 겹쳤습니다.
신입생 적응교육(반배치고사로 시작되는 기숙사 적응기간) 마지막날 대학탐방(카이스트)이 예정돼 있었는데, 그날은 중학교 졸업식이기도 해요.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 담임선생님께 여쭤보고 나서 졸업식 불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어제는, 몇 번 들어가 보지 않은 아이 중학교에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러 가는 날이 되었죠.
긴장감이 맴돌던 자리를 느껴봅니다. 너무 오랜만에 가봐서 어디에 3학년 교실이 있는지 헤맸습니다. 학생들을 몇 명 붙잡고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대학 캠퍼스처럼 대단히 넓고 복잡한 건물도 아니고 달랑 2개 건물이 이어져 있을 뿐인데, 아이들은 관심 가져 본 적이 없다는 눈치거나, 알려주고 싶어도 어딘지 모른다거나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졸업생 엄마가 되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그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학교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학교라는 터전을 구석구석 궁금해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았을 겁니다. 고작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말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안은 물론이고 학교 주변까지 샅샅이 뒤지며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둘째 모습이 겹쳐, 옆 동네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가 맞고 틀리지 않을 겁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익숙한 모습과 낯선 모습이 다를 뿐입니다.
"엄마~" 반갑게 맞아주는 딸 뒤로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보입니다. 끝까지 남아주었던,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친구네요. 큰아이가 성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중2 첫 시험부터 2년 내내, 남다른 성실함으로 책상에 앉아 공부메이트가 되어주었던, 잘하고 싶은 그만큼의 책임감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나간 멋진 친구예요. (이 친구와의 특별한 인연은 4-5세 그러니까 2013년-2014년 정도로 돌아갑니다.)
학교는 영하 10도의 찬바람이 부는 날씨 속에서, 제법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여러 개 품고 있더라고요. 아이가 머물던 교실도 둘러보았습니다. 학생들이 가고 남은 자리, 책상과 의자들만 있어도 빽빽한 교실. 아이들이 다 오면 교실 앞부터 뒤까지 남는 공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의 '버텼다'는 표현이 와닿았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싸웠을까요.
담임선생님을 찾아 교무실에 찾아가려고 했는데 마침 반가운 얼굴로 먼저 인사 나오셨습니다. 말보다 표정으로, 어려웠던 1년의 여정을, 웃음과 격려로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사실 전체를 보면 학교 상황이 마음 편하지 않지만- 가끔은 기쁘고 감사한 장면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큰아이를 두고 '빛이 되는 존재'였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개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보이지 않는 갈등을 드러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 잠시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이날은 마침 3학년이 졸업을 앞두고 반별로 합창을 준비해 무대에 올리던 날이었는데, 음악을 잘 모르는 큰아이에게 음악선생님께서 지휘를 맡기셔서, 사실 큰 기대 없이 아이를 보낸 날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과 중간에 나오신 옆반 국어 선생님께서, 지휘를 잘했다고 무척 칭찬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아이도 여러 선생님께 칭찬받았다는 말을 덧붙이길래 궁금함에 영상 파일을 열어봤습니다.
졸업식을 대신하는 합창제.. 지휘자는 얼굴이 안 보이는 상태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손과 팔을 움직입니다.. 사실 지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처음이었어요. 자식이다 보니 눈여겨 살폈는데, 왜 그렇게 칭찬받았는지 알 것 같더군요. 아이는 자신을 뽐내려고 무대에 오른 기색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왼쪽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귀 기울이며 시선은 노래하는 반 아이들 전체를 향하는 '연결자' 역할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몸짓으로 보여주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로요.
저는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내며,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그럴 필요를 애초에 느끼지 않는 아이들을 정말 많이 봐 왔습니다. 제법 똘똘한 기색이 느껴지는 아이들이 대다수인 이곳에서, 자신'만'이 돋보이도록 애쓰는 아이들을 매년 만났습니다. 비교과는 교사조차 대놓고 무시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인성문제가 널리 알려지자, '공부만' 잘하는 학교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시할 실력은 아니지만 이런 식이면 뽑고 싶지 않다고 지역자사고 교장선생님께서 찾아오신 적도 있는 데다, 올해 초에는 무슨 일인지 교육감이 학부모 총회에 오셨는데,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나 (교장선생님과 교육감님이 나란히 앉아 대화 나누는 모습 속에) 교장선생님은 계속 말씀이 많으셨고 교육감님은 표정이 심각했다는 걸 기억합니다. (저는 계속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압니다-) 학교에서 어떤 생각으로 합창제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회 순위를 떠나 저는 아이가 이런 역할을 맡고 잘 해냈다는 사실이 정말로 뿌듯했습니다.
고입의 모든 결과가 발표된 12월 초.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선생님들의 표정도 만개로 펼쳐집니다. 결과가 좋다고 하는 아이들도 불안과 걱정이 없을 리 없고, 당연히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아이들이 떨어지는 불상사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경우는 내 자식 옆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정말 괜찮은 아이가 선택받지 못한 경우인데, 고민에 휩싸였지만 맘껏 티 낼 수 없는 불편함이 얽힌 모습을 마주하며.. 그 아이만의 때가 오기를, 그때까지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벌어지는데, 이런 경우는 중학교에서나 고등학교에서나 진심으로 거르고 싶었고 나름 걸렀으나 걸러지지 못한 경우로, 이 또한 뿌린 대로 거두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됩니다.
큰아이가 찍어온 사진을 보며- 1년 동안 이 아이 곁에서 그렇게 선하고 예쁜 웃음으로 곁을 내어줬던 같은 반 친구한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가고 싶어 하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고 꾸준히 안정적으로 공부했던 학생으로 기억합니다. 입시 결과가 특별히 빼어나지 않아도, 저희 아이한테는 소중하고 특별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저희 큰애한테 한 작별인사가 "건강해-"였다고 해요. 친구도 건강하길 빕니다.
큰아이에게 누누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자리는.. 누군가 너무나 오고 싶어 했지만 오지 못한 자리라는 걸 기억하렴. 너는, 누군가의 그 간절했던 소망들, 힘겨웠던 노력들, 머금은 눈물들을 '입고'이 자리에 있는 거야.. 너 혼자 힘으로 온 게 아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잘 싸워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