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고 입성기 7. 천운이 필요할 때

매달리는 대신, 쓰레기를 주워 모아 버림

by 아보카도

그날이 기억난다. 아마 잊기 어려울 것 같다. 큰애 2차 면접 직후였다. 개인적으로는 더 중요했던 3차 면담을 준비하던 시기다.


25년 인천 수과학 축전이 지난해 가을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수과학 행사로는 제일 큰 인천시 행사였다. 시기가 중간고사 '직전'이어서, 시험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학생이 일부러 찾는 게 더 어려운 행사. 주차부터 쉽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주로 교사와 학생들)이 모이므로 이곳은 그야말로 '완전 개방'된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24년에 시간을 쪼개 처음 가봤는데, 영재원 사사과정(중3) 면접 질문 대비가 목적이었기 때문에(이것까지 준비시키는 학원은 아마 없지 싶고, 큰애는 중2까지 학원 경험이 없었다)- 화학 관련 부스만 빠르게 돌았던 기억이 난다.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시험기간이어서 두 시간 정도 있다 나왔다)


나는 이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지 24년 처음 가보고 직감했다. 24년엔 자율동아리라는 이유로(사실 자율동아리라 참가 불가한 건 아니다, 25년 수학 자율동아리도 큰애 창체동아리와 함께 참가했으니까. 다만 학교마다 시기마다 사정이 다르며, 큰애 학교에서는 소위 '미는' 동아리여야 했다) 부스운영을 해볼 생각조차 못했지만(욕심내지도 않음), 생각하기에 따라 운영부담 없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이었기 때문에 2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알차게 체험하고 왔었다.


일 년 뒤 큰애와 함께 우여곡절 끝에 같은 공간에 다시 섰다. 4월부터 학교생활에 지장이 생길 만큼 큰애가 동아리 관련 문제로 갈등 겪는 걸 지켜보다 보니, 나이에 맞지 않는 노련함이 필요해서 나까지 긴장하면서도 지쳐 있었다. 나는 24년과 다르게 운동장이 바라다보이는 벤치 맨 뒤에 앉아 핸드폰 한번 꺼내지 않고 몇십 분을 운동장만 바라보았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화나지도 않는 알 수 없는 멍-함이 찾아왔다. 연갈색 니트원피스를 입고, 새로 산 은은하게 빛나는 얇은 갈색 재킷을 걸치고, 새벽부터 (무슨 힘이었는지) 김밥을 싸서 십중팔구 아침식사를 걸렀을 동아리 아이들에게 몇 개를 건넨 뒤였다. 전년도와 다르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 많은 체험부스들을 몇 번이나 스쳐 지나며 돌고 또 돈 뒤였다. 내 머릿속은 큰애 2차 합격 여부를 가늠하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곧 있을 중간고사 수과학 성적은 어떨지도 잘 모르는 채.

점심이 지나며 아이들이 늘고 운동장에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다 보니, 부스마다 나눠주는 간식들을 먹고 난 뒤 일부러인지 실수인지 알 길 없이 떨어져 있는 흔한 광경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 입은 새 옷을 걸친 채, 검정 은장 구두에 흙먼지가 내려앉도록 놔두면서 쓰레기를 주워 모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넓은 곳에서 크게 없었고, 오후 5시까지 지켜보고 앉아 무얼 하겠나 싶었다. '그래, 쓰레기라도 주워야지.' 그게 운을 줍는 거라고 누가 그랬던 게 퍼뜩 떠올랐다. 천운이 필요한 때라면 엄마가 뭐라도 해야겠어서- 누구한테 매달리는 대신 그렇게 곱게 입고 쓰레기를 주웠다. 그렇게라도 걸으니 멍한 상태에서 조금 깨어났다.

작가의 이전글과고 입성기 6. 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