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같이 뛸게
“내일, 아침에 같이- 뛸래?”
일주일 동안 큰애와 함께 러닝을 할 수 있다면, 언제쯤이 가장 적당할까 머리를 굴려봤었다.
금요일 저녁.. 아니었다. 기진맥진 남은 할 일을 하다 새벽에 잠들곤 하는 애한테? 게다가 밤중의 달리기는 자칫 수면을 방해할 수 있어- 놉. 토요일 아침.. 모처럼 좀 늘어지게 잘 수 있는 시간을 쪼개 일어나 샤워부터 한다는 건, 주말 없는 직장생활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러면 일요일 아침.. 이미 러닝 약속이 있군. 월요일은 그냥 불가능이지- 7시 반에는 양손 가득 짐을 싸들고 나가야 학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으니.
그래서 다시 생각을 거꾸로 감아, 토요일 아침밖엔 안 되겠다 싶어- 금요일 저녁 큰애를 차에 태우고 나서 천천히 물어봤다. 내일 아침에 같이 뛸래..?
“음- 그래~”
고민을 왜 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정말 일어나 뛰고 와 아침준비까지 할 체력이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뱉은 말에는 무게가 있다- 21시에 학교 앞에서 픽업해 집에 돌아와 빨래를 3번 돌리고 널고를 반복한 뒤 새벽에 잠이 들었는데, 7시 50분에는 큰애가 나를 깨웠다. 얼른 뛰고 오지 않으면 독서실에 늦겠다면서.
가볍게 씻고 일단 나갔을 때, 날이 생각보다 따뜻했다- 하얗게 고운 목련을 초단위로 감상하며, 겨우 내 이렇게 예쁘게 피려고 준비했던 벚꽃을 기특해하며, 그렇게 큰애와 달리기를 시작했다.
새로 산 러닝화를 큰애한테 양보한 보람이 있었다. 말끔한 하늘색 러닝화를 신은 큰애의 달음박질을 보고 있자니, 꼬까옷 입히고 나들이 나섰던 아이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행복해졌다.
그동안 문 밖을 나설 용기조차 쉽게 내지 못해,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다 입고도 저녁이 될 때까지 망설이다 결국 밤에 잠깐 나가 걷거나 했던 일상이 스쳐 지나갔다. 6-7년 전에 샀던 신발들이 멀쩡하게 말끔한 건 그 때문이기도 했다. 그 해묵은 멀쩡함은, 쉽게 버리지도 새로 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불편함을 자아냈다. (사주기만 하면 꽤 튼튼한 신발이라도 한 달 뒤엔 낡아 헤지기 시작하는) 둘째의 신발과는 결이 달랐다. 고민은 좀 됐지만, 러닝화는 사야겠더라.
바람을 가르며, 큰애는 한 번을 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보기보다 독종이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주말 아침이고, 분명히 일주일 내 체력 소진이 컸던 일정이었다고 들었는데 도파민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무엇이 큰애를 벅찬 일정 속에서도 그 상태로 만드는지 궁금해서 뚫어져라 바라보며 ‘너 뭐냐..‘를 반복했다.
“김**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있잖아, 나한테 진짜 큰 힘이 됐어. 힘들 때.. 그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진짜 대단하지 않아? 엄미도 그 학교 분위기 알잖아.. 우리 학교보다 일정이 1.5배는 빡세. 거기서 하위권부터 시작해서도 살아남았다는 거잖아. 진짜 쉽지 않거든 그거.. 그리고 김**선생님이 그 얘기도 해주셨어. 그 선배 진짜 착했다고. 입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착하게 살래.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겉돌았는데, 운이 좋았대. 착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남는 운을 끌어모아 그 학생이 다 가져간 것 같더래.“
시작이 완벽하지 않고 모자람이 많은 상태를 견뎌 끝내 가고 싶은 길을 갔다는 그 이야기는, 아이의 마음에 남아 일주일을 매진하고서도 힘이 남아있게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어딘가 존재하는 그 선배를 떠올리면 기면(새벽공부)도 할 수 있고, 8시 다돼서 일어나 달리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 선배가 다녔다는 학교에.. 사실 나는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의 이면이, 내 아이를 향해 몸을 돌려 돕고 있었다. 그리고 큰애는 그렇게 어떤 상태를 상상하며 자신을 연결 짓는 것 같았다.
이 아이가 축적해 온 상태를 미뤄보아 앞으로 쌓아 나갈 상태를, 나는 감히 기대한다. 매일, 매주, 스스로 그 근거를 만들 테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누군가의 박수가 없을 때도 스스로 뛰어내는 용기를, 아이는 이미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아이를 신뢰하는 이유다.
뛰고 오라고 말하는 대신 같이 뛴 날, 나에게도 박수와 신뢰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