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비우자 공허가 채워졌다.

인생은 아이러니

by 풀니스

아이들은 시댁에 갔다. 그렇게 무서워 벌벌 떨던 아빠라는 존재는, 자신의 과오와 허물은 언제 입었던 적이라도 있었던냥 벗어던지고, 착함과 친절이라는 옷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원래 아이들이란 선하고 천진한 구석이 있어서,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은 같은 편이라 굳게 믿는 어리석음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더이상 숨막히는 시댁이란 공간에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언제 소리를 지르고 기분이 나빠질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평안.


아마도 짐작컨데, 이미 자신의 죄는 하나님께 구하였고 개과천선한 척 아이들에게도 너무나도 친절한 아빠의 모습만을 절절하게 세기고 있으니. ‘아이들이 원하면 중국으로 보내라’는 합의 조건 뒤엔 절대 씻기지 않을 그 인간의 오만함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으리라. 한 인간이, 이토록 처절하게 역겨움과 추함이라는 수식어만을 남기기도 쉽지 않은데. 난 그래서 당당하게 교회 다닌다고 말하는 인간을 혐오한다.


십년. 실제로 함께 보낸 시간을 계산하면 몇 년이나 될까? 그 중에서 윽박지르지 않고, 기분 나쁘지 않고, 노심초사하지 않고 보낸 기간을 또 빼면 남는게 있긴 한지 모를, 의구심만 가득 남은 내 결혼생활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항상 공허했었다. 왜 그런지 몰랐는데, 그 사람을 제외하고 나니 풍성하진 못할 지언정 절대 메워지지 않을 줄 알았던 인생의 구멍이 채워졌다. 그는 알까? 자신이 얼마나 끔찍하게 내 영혼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앗아갔던지. 그걸 안다면, 아마 ‘이혼 사유를 뭐라고 하지?’ 라는 말을 뻔뻔하게 뱉지는 못했을 거다. 그렇게 흑탕물만 출렁이는 것 같던 숨막히는 존재가 사라지고 나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는 것. 그게 부부라는 이름으로 얽힌 존재 간의 숙명 같은 고통이라니. 결혼 서약에서 하는 다짐들은 그저 다짐을 위한 다짐이었던 것이다.


왜인지

분노가 꺼지지 않는 밤. 1차 합의 내용을 이야기 하고 아이들과 신나서 시댁에 간 오늘. 일요일 까지 아이들은 시댁에 있다가 교회까지 가고 돌아온단다. 그럴 수 있지. 그래도 되지. 근데 왜 이렇게 역겨움이 자꾸 목구멍을 쓰라리게 만드는건지.


자기 아들에게 ‘씨발새끼’라고 칭하는 아빠라는 존재의 무색함.

온갖 물건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딸에게 ‘한번만 방을 이꼬라지로 만들면 벌설래? 맞을래?‘ 를 선택하게 하는 아빠라는 존재의 포악함.

아이를 세워 놓고 가방으로 후려치는 걸 막았다고 아내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서슴치 않는 남편이란 껍대기의 악마.


난 그에게서 도망치듯 남경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병신 같이 얻어 맞고도 한달을 버티다가 한국으로 와서 이혼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한달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천사같은 아빠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 인간은 착각 중이다. 아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마음 먹은 건, 그저 내가 한국에 머물기로 고집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늘 그랬다. 자기 통찰이라고는 쥐똥 만큼도 없이 남탓과 책임전가로 점철된 삶. 한달 반 동안, 자기 없이 한국에서의 삶이 즐겁고 평안하고 풍요로웠기에 지금의 밝아진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신기할 따름이다. 인간이 얼마나 오만하면, 그렇게 자신의 티끌을 보지 못하는 걸까.


나는 당신이 이미 아이들에게 준 상처 때문에 이혼을 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선심 쓰듯 이혼을 해주는 그 사람은 ‘(너가 억지를 부려 이혼을 해서) 앞으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을 거‘라고 단정짓는다. 자기연민에 빠져 죽어간다. 나는 홧병에 걸려 죽어간다.


미워하지 않고 싶었다. 아니, 보란듯이 잘 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미워하지 않기로 다짐 했었다. 그런데 아마 그렇게 못 할거 같다. 끊임 없는 분노와 미움이, 날 잠 못이루게 만든다.


니가 빠져 나가니 늘 공허했던 마음이 채워지긴 했는데, 그게 속절없는 분노일줄이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이래서 인생은 달고도 쓰고도 짭짜리한 것이, 알 수 없는 것이다. 너무 싫다. 죽도록 밉다. 아이들만 데리고 교회에 가서는 ‘뭐가 문젠지 모르겠는데 이혼 해 달라고 고집을 부려서 그냥 해 줬어요. 전 아이들에게 이렇게 잘 하는 걸요, 허허허’ 하며 가증을 떨 얼굴에 침을 뱉고 싶다. 이런 미움은…정말 극한의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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