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과는 도통 다른 나의 세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흙 밟고 물장구치며 자연 속에서 키워야지, 어린이집은 공동육아를 선택할 거야, 학습은 중학교부터지 초등학생이 무슨 공부야?, 친구들이랑 신나게 노는 게 더 중요해.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내뱉은 말들이다.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색깔을 유심히 관찰하며 무지갯빛 내일을 꿈꾸고 싶었다. 나무기둥에는 어떤 곤충이 살고 있을까, 줄지어 이동하는 작은 개미들은 어디에 살까, 소위말하는 엄마표 놀이들을 하면서 행복한 양육생활이 이어질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당시에는 SNS에 올라오는 '자기주도학습'이니 '공부습관'이니 하는 공부에 열을 올리는 엄마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고 말고' 라고 맞장구치며 그녀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다. 나는 한 걸음 또 어떤날은 열 걸음씩 꿈꾸던 양육관과 멀어졌고 아이는 매일 학원을 2~3개씩 오가며집에 오면 숙제를 하다가 내일이 밝아온다.
정말이지 나는 아이라면 응당 모두 잘 먹고 배부르면낮잠 자고 눈 맞추면 웃어주는 줄 만 알았다. 내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윽고 엄마가 된 후부터 나의 모든 환상이 깨졌다. 나의 육아는 어느 하나 보통의 것과는 달랐다. 결혼 전까지 효도는커녕 명절이고, 김장철이고 친정엄마의 일손을 돕기는 고사하고그때마다 약속을 잡고 나가 놀다가 밤이 되면 슬금슬금 기어들어와 엄마가 부쳐놓은 따뜻한 전이나 집어먹는 딸이었다. K장녀는 그렇게 이기적이었고 어느날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육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나의 삶은 마치 젊은 날에 대한 벌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태어나 백일까지 등센서를 달고 바닥에 눕자마자 온 힘을 다해 울었고, 배고픔을 못 느끼는 아이처럼 입이 짧았다. 맘카페로 알게 된 또래 엄마들과 공원산책을 나가면 내 아이만 유모차에 눕자마자 악을썼다유모차에 올라타 스스륵 잠드는 아이의 엄마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걷기 시작할 무렵은 또 어떻고, 나도모르게 꽉 깨문 어금니가 시려온다. 엄마 손잡고 잘만 걸어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내손을 뿌리치고 반대편으로 달아나는 아이도 역시나 내 아이뿐이었다. 숲체험이고 나발이고 다른 아이들은 전부 흙을 밟으며 선생님을 따라갈 때 내 아이만 흙을 흩뿌리며 줄지어 지나가는 개미를 따라갔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아파트 단지에 물놀이터가 열렸는데 예쁜 수영복을 사서 잘 차려 입히고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아이스라테를 들고 '오늘 하루만큼은 물장구로 순삭이겠지' 를 기대하며 내려갔지만 부푼 꿈은 아이스라테를 두 모금 넘기는 사이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화려하게 뿜어대는 분수대가 무섭다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놀이기구가 무섭다고 악을 쓰며 '집에 가자' 를 외쳤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보통의 호사를 누리겠다고’. 남편은 그란데사이즈를 한 모금에 해치우고 아이를 안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았다. 입주민 혜택은 누리지도 못한채 뽀로로 물총으로 한 줄기 한숨만 쏟아냈다.
드디어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던 해 나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해방의 만세를 불렀다. '나도 이제 어린이집 보내고 커피숍에 갈 수 있는 것인가?' 마침내 나에게도 보통날 이라는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일주일쯤 커피를 달게 마셨다.
하지만 이내, 보통과는 도통 다른 나의 세계가 다시또 펼쳐졌다. 아이가 어린이집 낮잠시간에 대성통곡을한다며 ‘어머님 아이가 낯선 환경에 굉장히 예민한 것 같아요. 익숙해질 때까지 점심 먹고 하원하는 것이 좋겠어요' 선생님의 권유에 나는 또 그렇게 1년 가까이 쓴커피를 마셨다. 아침에 옷을 입혀 내보내는 것이 훨씬 더 번거롭게 느껴지는 고작 2시간의 자유를 만끽했고 그마저도 '잘 놀고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걱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부터였다. 아이와의 학원투어로 그토록 내가 꿈꾸던 자연과 뛰놀며 자라나는 육아로부터 멀어졌다.
상담사로 일하는 가까운 지인의 조언을 참고하며 아이의 예민함을 낮추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엄마 말고 낯선 사람들과의 시간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유아체육이나 미술 선생님 등 낯선 어른과의 시간에 익숙해지도록 했고, 첫날은 교실 문을 열어놓고 내가 보이는 상황에서 10분, 다음날은 문을 닫고 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10분. 그때마다 나는 교실밖에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뎌내며 지옥을 경험했다. 스탭 바이 스탭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아홉계단을 올라와 아이는 2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이제 엄마보다 학원선생님들에게 더 많은 속내를 털어놓고 혼자서 등하원을 할 만큼 성장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아이가 학원보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건물 밖 계절의 흐름을 만끽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나는 자유보단 잘짜여진 루틴속에서 안정감을 찾고 친구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하는, 여전히 여러므로 어려운 이 아이의 엄마다.
남들은 엄마, 아빠의 이름보다 친구 이름을 많이 부르게 될 때 슬픔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오늘도 와글와글한 놀이터를 지나 조용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오늘은 단짝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와 함께놀았지만 나는 언제나 보통사람의 슬픔이 기쁨으로다가온다.
아이는 이제 곧 간식을 먹고 학원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나는 하원을 기다리며 또 SNS를 들여다 본다. 방과 후 학습은 하나도 시키지 않는다며 자연에서 뛰놀고, 놀이동산, 박물관 인증샷이 즐비한 모습이 담겨있다. 그 순간 나는 또 궁시렁거렸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어떤 엄마들은 '공부습관'에 또 어떤 엄마들은 '놀이'에 방점을 두지만 언제까지나 육아는 리버시블! 이다.나는 오늘 이쪽면을 입고 있지만 내일이면 다시 반대편으로 바꿔입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굳이 저렇게 까지 해야만 하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양육스타일과 엄마들을 리스펙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