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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슈돌을 안보는 이유

새 학기의 파도 위에 단단한 바위가 되어

by 마이분더





언제부턴가 TV속 연예인의 아이들이 나오는 프로를 보면 불편했다. 내 건강문제로 모유를 100일밖에 줄 수 없었던 죄스럽던 순간에 하루 이틀 100일은 가까워오는데 신생아시절부터 입이 짧았던 아이는 먹어야 할 양의 3/1 정도만 채우면 입술을 닫아버렸다. 하지만한창 육아프로램이 성황이던 그때 슈돌에 나오는 엄마들은 모두 완모에다 아기들은 복스럽게 잘 먹었다.


슈돌을 안보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같다. '연예인들은 복도 많지. 남편이 저렇게 아이도 잘 보지, 유명인사니 돈도 잘 벌지, 아이도 잘 먹고 잘 자라지.' 어쩜 하나같이 이렇게 나랑은 다른 것인지 한숨만 흘러나왔다. 그리고 또 골고루 잘 먹어서 그런지 전부 똘똘해서 또래보다 뭐든지 발달이 빠른 모습들이특히 부러웠었다. 우리 애는 이유식 한 숟가락 먹이는 것도 이렇게 힘들고, 발달이 빠르기는커녕 조리원 동기들 뒤꽁무니 따라가기에도 바쁜데 사촌이 땅을 산것보다 한 오백배쯤 배가 아팠다. 그렇게 점점 나는 슈돌과 멀어졌고 얼마 전 제이쓴, 홍현희 부부의 똥별이가 재방송에 나오길래 근 5년 만인가. 실로 오랜만에 슈돌을 다시 보게 되었다. 똥별이의 첫 이유식을 만드는 일화였는데 청경채와 쌀을 맷돌로 정성을 다해 갈고 끓이는 제이쓴님의 모습에 저런 세심한 남편상도 부러웠지만 뒤이어 이어지는 똥별이의 복스러운 먹방모습에 나는 또 마음이 불편해졌다(물론 똥별이는 정말 귀엽다). 이것 봐, 이것 봐 연예인 아이들은 다 이렇게 잘먹고 잘 자란다니깐. 오늘도 나는 삼시세끼 계란 아니면 고기만 드시는 아홉 살 먹은 아들에게 야채를 주기 위해 계란에 숨기고 고기 속에 숨기고. 그마저도 살짝 야채가 보이면 여지없이 숟가락을 내려놓는 아이와 마주했는데 말이다.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도경완, 장윤정 부부의 하영이와 연우는 또 어떤가. 골고루 잘 먹는 먹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연우는 공감능력까지 뛰어나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동생을 잘 챙기는 것은 물론 부모마음까지 잘 헤아렸다. 그에 반해 나는 늘 소심하게 뒤로 빼고 친구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또래관계고민까지 더해져있다.


하기사 움츠려든 어깨, 내 발걸음만 쫒는 고개 숙인 눈동자는 내 어린 시절과 꼭 닮아 있다. 일곱 살 유치원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워 교실 구석진 자리에서 적당한 무리들 뒤에 몸을 숨기고 하원할 때만 기다렸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나서는 어찌어찌 2명의 친구를 사귀긴 했지만 생일날 초대장을 건네지 못해 엄마와 단둘이 민망한 생일파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꽤 자주 아이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을 마주한다. 아이의 긴긴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까지 나를 닮아 긴장감이 높은 아이의 새 학기는 살얼음 위를 걷는 임산부처럼 아이를 꽉 품고 깨질세라 움켜쥐고 걸어가고있는 기분이든다. 개학 전날 아이의 마음이 불편할까 지레 겁을 먹은 나는 '내일 새로운 교실에 가서 떨리지않아?'라고 물었다. '1학년도 아닌데 뭘, 처음 학교 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떨려.' 의외로 아이는 태연했다. 새 학기의 긴장감이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등교 이틀째인 오늘, 갑자기 아이는 이마 위가 간지러운 듯 자꾸만 고개를 흔들며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했던 작년 3월과 닮아있다그러나 이제 2학년이 된 형아는 새로움에 대한 긴장감을 스스로 쓸어 넘길 만큼 한 뻠 더 자랐다.


이제 내 차례다. '왜 머리 흔들어!'라고 다그치며 불안해하기보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바위처럼 거친 파도를넘겨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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