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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안 하는 방법

by 마이분더








나는 어두워질수록 머릿속이 맑아진다. 저녁형 인간이라면 일찌감치 미라클모닝일랑 집어치우고 수많은 밤들을 기록하며 미라클나잇을 바라본다. 저녁 8시쯤 주방에서 퇴근했다. 방문을 열어두고 슬그머니 방으로들어와 책을 읽었다. 방문을 열어두는 것은 내 몸은 따로 있지만 가족과 함께라는 일종의 연결장치인데 남편은 살금살금 다가와 굳이 방문을 닫아준다. 그리고 마치 자유를 얻은 듯이 발걸음도 신나게 거실사이를 오간다.


그사이 아이도 학교수업을 마치고 선생님 눈에서 벗어난 것처럼 덩실덩실 재잘거리며 볼륨을 높였다. 뒤이어 남편은 아이에게 조용히 하자며 입술을 깨물고 복화술로 타일렀다. 아무래도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나는 매일 밤 두 남자와 단절됐다. 분명히 혼자 있는 시간이 좋은데 남편이 점점 옆집 사는 청년처럼 느껴진다.




방에 누워 책은 두어 장 넘기고 잡념에 빠졌다(남편은 내가 독서삼매경인줄 알지만 거의 매일 잡생각에 빠진다). 오늘 낮, 아이의 질문이 떠올랐다. 태권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난데없이 물었다. ”엄마, 걱정을안 하려면 어떡해야 해?" 아니 또 무슨 걱정이란 말인가. 걱정에 관한 레퍼토리는 하루에도 열두 번 끊임없이 늘어나기에 안심시켜 줄 말들을 떠올리는 것에도 싫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걱정거리에 대한 실체가 없었다. 티베트의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속담처럼 그저 걱정이 없어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아홉 살 인생도 알고 보면 꽤나 고달프다.


아무튼 그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아이의 보폭으로 천천히 걸으며 머리를 굴려봤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걱정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없었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 어려운걸 아이에게 쉽게 요구하고 있었다니!' 최근 종이호일의 위험성에 관한 기사를 보고 그동안 종이호일을 깔고 구워 먹은 음식들이 떠올라 걱정을 하고, 약속시간이 30분이나 남았는데 늦을까 봐 걱정을 하고, 안먹어도 되는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셔놓고 밤에 잠이 오지 않을까 봐 걱정을 했다. 그렇게 오늘도 이런저런 걱정들로 날카로운 하루를 보냈다.


그동안 나는 아이가 무엇인가 걱정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까지 흐려져버리니까 억지로 구름뒤에 가려진 햇살을 강요했다. "너 이렇게 자꾸 쓸데없는 걱정 하면 걱정부자된다!", "좋을 일만 상상해야 좋은 일이 찾아오는 거야" 라며 그 흔한 말들로 아이를 다그쳤다. 사십이 넘은 나도 여전히 이렇게 한가득 걱정을 안고 살면서 고작 아홉 살을 넘긴 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다.

아무튼 이래서야 원. 나도 참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도 집 앞에 도착할 무렵 겨우 대답을 전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나는 이내 또 아이의 마음을 걱정할 테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어.
걱정을 짧게 하거나,
길게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뒤이어 아이가 말했다. "그래? 그럼 나는 짧게 하는 사람인데? 내 걱정은 오늘만 지나면 맨날 없어지거든!" 다행이다. 할 수만 있다면 수 많은 걱정들은 나만하고 살고 싶다(물론 아이 것만!)


그나저나 걱정을 안 하는 방법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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