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고 해서는 안 될 두 가지

by 문이


나무그네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오셨다.

"옆에 좀 앉아도 돼요?"

칠십대로 보이는 할머니와 나무그네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심심해서 여기 자주 오곤 해요. 이 그네에 앉아있으면 흔들거리는 게 재미있고 좋아요."

이 자리는 할머니가 애용하는 자리인가 보다. 할머니는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목소리도 낭랑해서 건강해 보였다.

"내가 이리 이사 와서 혼자 사는데 낯설고 심심해서 못 살겠어요."

"언제 이사 오셨는데요?"

"두 달 전에."

"그럼 동네 복지관에 한번 가보시지 그래요?"


할머니는 이곳에서 만난 다른 할머니의 소개로 복지관에도 가보셨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밥도 먹고, 자랑만 일삼고, 멀리서 자신을 보면 낄낄대고 무시하며 왕따를 시켰다고 한다.

"내가 30대에 남편을 잃고 계속 혼자 살면서 딸 대학교수 만들어 놓고, 한때 사업도 해서 돈도 많이 모았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맨날 하는 얘기가 돈 자랑, 남편 자랑, 자식 자랑이야. 어디 남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냐고요."

나는 할머니의 얘기에 공감을 해주며, 그럼 문화센터에 가보거나 운동 그룹에 속해 보시라고 제안을 했다. 할머니는 서울에 살면서 다 해봤다고 하신다.



"없으니까 얘기해도 되겠지? 내가 우리 딸년한테 쫓겨났지 뭐예요. 날 살던 곳 근처에다 집을 얻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다 갖다 놓으니 아는 사람도 없고 낯설고 해서 힘들어요."

나는 딸에게 쫓겨난 할머니의 사연이 몹시 궁금해져서 귀를 기울이며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가 되었다.

"나이 먹고 늙어서 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는데 뭔지 알아요? 궁금하죠? 궁금하면 오백 원."

하면서 손을 내미신다.

"하하, 농담이구요."

나는 할머니의 유행 지난 농담에 할머니 편이 되어갔다.


딸이 서울의 유명한 대학교 교수이고 사위는 회사를 경영한다고 한다. 원래는 딸과 따로 살았는데 하도 엄마랑 합치자고 부탁을 해서 딸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합치기 전에 모아놓은 재산을 다 딸에게 주었다고 한다. 적금 통장까지 주려고 하니 사위가 '어머니 주머니에서 떠난 돈은 어머니 돈 아니'라며 극구 말렸다고 한다. 그런데 같이 살다 보니 딸하고 자꾸 싸우게 되었단다.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함께 살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기 쉽고, 서로에게 잔소리하게 되고, 가장 믿고 편하게 생각하는 모녀 사이는 배려는 뒷전으로 두고 말부터 앞서게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봐온 터였다.

우리 친정 가족도 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시는 이유가 서로를 맞추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이다. 간간이 안부를 전하고 만나니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 안쓰러운 마음만 커진다.


할머니의 경험에서 얻은, 나이 들어 해서는 안 될 두 가지는 딸과 합쳐서 함께 사는 것과, 재산을 자식에게 모두 줘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많겠지만 딸과의 관계가 할머니처럼 되는 경우도 흔하게 봐왔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상황과 환경에 따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같이 살며 아웅다웅하다 서로가 상처만 입게 된다면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부모 자식, 연인,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이어령 선생께서도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잘 볼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나와 나' 사이에도 거리를 두고 보아야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식에게 재산을 다 맡기는 것도 전적으로 자식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재산을 주고 받을 당시는 서로가 좋다고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이 퇴색되고 서로에게 권리와 의무만 부담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노인은 죽는 날까지 정신과 육체와 경제를 똑바로 세우고 돌보아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을, 할머니의 소중하고 솔직한 얘기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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