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카뮈의 철학

by 문이


900%EF%BC%BF1753935801876.jpg?type=w966



이 책의 문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문장이 짧아서 쉽게 읽혔다.


하지만 내가 너무 관습에 갇혀 있는 인간이라 그런지 주인공 뫼르소의 말과 행동이 많이 낯설었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일, 마리의 결혼 제안에 그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던 말, 레몽의 부탁에 여자를 유인하는 편지를 써 준 일, 그리고 태양이 강렬하고 어지러웠다는 이유로 방아쇠를 당긴 일이 그랬다.


SE-1ab26be6-eaa0-4464-9432-25a5ebc1ae7d.jpg?type=w966


검사는 뫼르소를 범죄를 사전 계획한 용의주도한 사람으로 정해놓고 사건을 해석한다.


뫼르소는 관습을 멀리하고, 있는 그대로를 감정 없이 바라보는 인물이었다. 그 당시 사회의 관념을 강요하는 세계와 타협하지 않았고 자신 내면의 감각에 진실한 인물이었기에 결국 사형에 이른다.


SE-e7fbfa9e-8adc-465a-98f7-998fcf840536.jpg?type=w966


사건 당사자를 빼고 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변론이 오가는 부조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SE-cff66eaf-e37e-44bc-be15-fdd73ec43369.jpg?type=w966 80쪽 신념을 강요 당하는 뫼르소




카뮈는 실존주의 철학을 연구하며 부조리에 대한 고찰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부조리를 느끼는 원인이 무의미한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대립에 있다고 했다.


주인공 뫼르소는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었기에 자기 내면의 감각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드러냈지만 사회규범에는 무관심했다.




SE-1c14e51a-aa13-433b-83ec-b514faf2980f.jpg?type=w966 재판정 안에서 이방인임을 느끼는 뫼르소



"그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는 얼굴을 찾아서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같은 세계의 사람들끼리 서로 만난 것이 즐겁기만 한 무슨 클럽에라도 와 있는 것 같다는데 주목했다."


SE-56a98ae2-567e-4a39-ac0d-366a5377256d.jpg?type=w966



감옥에서 뫼르소는 삶의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자각한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136 쪽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삶을 더 깊이 느끼며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뫼르소는 상상한다. 이는 뫼르소가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연결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뫼르소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세상과 완전히 대면하고 있다는 확인, 즉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마주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진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세계는 의미도 감정도 부여하지 않는 무심한 존재이고 우리는 이 우주의 무심함 속에서 오히려 평온과 일체감을 느끼며 덜 외로워진다고 말하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년 예술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