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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이다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by 문이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못 보던 것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암시와 비유를 읽어낼 수 있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저자는 감정과 표현을 절제하고 억누름으로써 깊은 진동과 여운을 전해 주었다.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는 1985년의 아일랜드 사회를 알아야 한다. 70년대의 석유파동은 경제 불황으로 이어졌고 실업률은 16%에 달했다. 권위적인 교회와 부패한 정치가 손을 잡고 사화에 억압을 가했다. 낙태와 이혼을 금지했고, 이혼모를 배척했으며 해외 이주자가 늘었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도 쉽게 일어나는" 시절이었다.

소설의 모티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와 아일랜드 정부가 함께한 막달레나 세탁소 시설에 있다.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수용하고 착취했다"라고 한다. 아름다운 것도 죄라니 여성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던 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깨끗하게 되돌려야 할 세탁소에서라니.

이 소설은 11월부터 크리스마스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펄롱은 석탄 등의 연료를 파는 가장이다. 그의 엄마는 16세에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한다. 미시즈 윌슨의 농장 일꾼인 네드는 그와 그의 어머니 곁에서 사소하게 그들을 돕곤 했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정체성을 갖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았다.

후에 우연히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네드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그가 아버지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에게는 딸이 다섯 있었는데 각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아내와 함께 감사하고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29쪽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쪽

그는 반복되는 삶에서 자신이 늘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때 펄롱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려고 밖으로 나가 외양간으로 가서 울었다. 산타도 아버지도 오지 않았다. 지그소 퍼즐도 없었다. 펄롱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자기를 두고 어떤 말을 하는지, 뭐라고 부르는지를 생각했고 그런 취급을 받는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했다." 30쪽

어렸을 적 이런 경험은 그가 평생 아버지에 대한 의문을 안고 살게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네드와 미시즈 윌슨이 베풀었던 작은 친절들을 회상한다.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다." 37쪽

소설 후반부에서 그는 결국 수녀원에 갇힌 한 소녀를 구원한다. 미시즈 윌슨과 네드의 사랑이 그의 용기에 불을 붙인 작은 불씨였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해 12월은 까마귀의 달이었다. 그런 까마귀 떼는 처음이었다. 시 외곽에서 새카맣게 무리를 짓다가, 시내로 들어와서는 길 위에서 걸어 다니고 고개를 갸웃하고 어디든 마음에 드는 전망 좋은 자리에 뻔뻔하게 앉아 있다가 죽은 짐승에 달려들어 뜯어먹고 길에 뭐든 먹을 만해 보이는 게 있으면 장난스레 덮치고 밤이 되면 수녀원 주위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에 자리를 잡았다.

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수녀원은 위풍당당한 건물이었다." 47쪽

이 부분에서 까마귀 떼는 종교와 정치를, 죽은 짐승은 약한 여자와 서민들을 비유한다. 좋은 위치에서 하는 일도 없이 지켜보며 약자들을 장난스럽게 죽음으로 내 몬다. 위풍당당한 수녀원은 그들의 위세를 뜻한다.

"어째서인지 수녀원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열매는 새들이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늙은 정원사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48쪽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와 푸른 잎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다. 새들이 이 열매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 수녀원에 생명력과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한 위선과 잔혹함, 즉 생명을 돌보지 못한 종교의 타락을 암시한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54쪽

펄롱이 선택의 고민 앞에서 자유 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원하는 길로 서서히 들어서는 장면이다.

"아무 상관이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55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방관자적 태도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 사회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씁쓸함이 몰려왔다.

"성모는 발치에 놓인 조화가 실망스럽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66쪽

종교의 거만함이 보이는 대목이다.

"검게 반짝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강 표면에 불 켜진 마을이 똑같은 모습으로 반사되었다." 67쪽

검은 배로 강은 처음 시작 부분에서부터 언급되어 소설 중간중간에 자주 등장한다. 암담한 미혼모의 현실을 검은 강에 비유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펄롱은 크리스마스에 예수가 태어나 세상을 구원하게 되듯, 어머니를 구하는 심정으로 크리스마스에 한 소녀를 구하고, 결국 자신을 구원한다. 앞으로 다가올 위험과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용기가 그를 더욱 행복하게 했다.

책 전체에 메시지가 가득히 감추어져 있다. 보물 찾기하듯 발견해낸 메시지들은 내 삶의 방향을 밝혀주며 진정한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작은 불씨 하나가 큰불이 될 수 있음을, 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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