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정원을 천천히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햇살이 잔잔하게 내려앉은 길이었고, 막 도착한 가족들이 하나둘 정원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각자 아이를 둔 두 가족도 함께 온 듯 보였습니다.
한 엄마가 다른 집 아이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작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어머, 여기 흉터가 졌네. 여기 까졌어. 어떻게 된 거야?”
이웃 엄마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이 엄마는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여기저기 상처를 살폈습니다. 아이도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며 조금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엄마와 아이는 아주 작은 상처 앞에서 한동안 함께 걱정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정도의 상처에도 어른이 크게 놀라고 큰 사건으로 다루면, 아이는 세상을 얼마나 위험한 곳으로 느끼게 될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자라면 작은 상처에도 겁을 내는 아이가 되지는 않을까 싶었습니다.
며칠 후 오현호 작가님의 유튜브 방송을 듣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를 보며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여기저기 많이 다쳐서 돌아오니 혹시 부주의한 성격이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그 아이가 도전을 많이 했다는 증거니까요.
많이 넘어졌다는 건 많이 시도했다는 뜻 아닐까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상처는 부주의의 흔적이 아니라 도전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넘어지지 않는 아이는 어쩌면 안전한 길만 걷는 아이일지도 모릅니다. 흙길을 달려보지 않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보지도 않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무릎이 까지고 팔이 긁힌 아이는 어쩌면 세상을 더 넓게 살아본 아이일지도 모릅니다. 나무에 올라가 보고, 달리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또 달려 본 아이일지도 모릅니다.
삶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넘어지지 않는 삶은 어쩌면 시도하지 않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상처 없는 삶은 어쩌면 도전 없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움직였다는 증거입니다.
상처는 약함의 흔적이 아니라 살아본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https://youtu.be/4gVOUsfuKlo?si=bUuPDUtIj4UREcb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