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속도로 달리기

by 문이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같은 길을 달려도 누군가는 가볍게 나를 앞지르고, 나는 그 뒤를 한참이나 두고 따라간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속도를 올렸을 것이다. 따라가 보겠다고, 뒤처지지 않겠다고 애써 발버둥 쳤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나는 남의 속도를 신경쓰지 않으려한다. 그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나란히 놓고 바라본다.


달릴 때, 힘든 순간을 넘어서면 앞서 나간 발이 뒤따르는 발을 이끌어 준다. 먼저 뻗은 팔이 뒤의 팔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그 단순한 동작에 몸을 맡기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며 흘러간다.

그 움직임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리듬이 생긴다. 발과 숨이 맞물리고, 호흡과 걸음이 일정하게 이어진다. 그 반복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올라온다. 특별할 것 없는 동작인데도 묘하게 기분이 가벼워지는 순간. 이유 없이 이어가고 싶어지는 힘. 그 안에서 나는 작은 희열을 느낀다.


천천히 달릴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면에 닿는 발바닥의 밀도, 폐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의 온도, 그리고 그날의 일렁이는 감정들.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그저 그런 상태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알게 된다. 내가 단순히 움직이는 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통과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달리기는 나를 현재로 데려온다. 과거를 복기할 틈도, 미래를 계산할 여유도 없이 오직 지금의 호흡에 머물게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이어지는 그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내면의 나를 만난다.


이 반복을 이어가다 보니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인생이 어떤 특별한 순간에 의해 달라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동작을 이어가는 시간들. 그 지루해 보이는 축적이 결국 한 사람의 무늬를 만든다.

종이 위에 선을 하나 긋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선이 겹치기 시작하면 선은 면이 된다.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나는 그 반복을 기꺼이 즐기려 한다.

달리다 보면 아무 생각이 남지 않는 찰나가 온다. 숨소리와 발걸음만 남고 다른 것은 모두 소거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만 또렷하게 남는 시간. 그때 나의 존재는 언제나 이 순간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전에는 늘 다음을 생각했다. 더 나아져야 하고,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생각을 뒤쫓느라 자주 지쳤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마음을 가불해 쓰느라, 이미 지나가고 있는 지금을 속절없이 놓치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지금의 이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한 걸음, 한 호흡을 온전히 느끼며 이어가는 지금이 쌓이면 결국 어디엔가 닿게 된다는 믿음이 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이 느리고 단순한 반복이 결국 나를 만들어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이미 충분히 살아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넘어지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