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시어머니는 치매와 심장병을 앓고 있다. 스스로 약을 못 챙겨 드시니 매일 전화를 해서 약을 챙겨야 한다. 늘 똑같은 대화를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어머니, 점심 드셨어요?"
"글쎄, 먹었나? 몰라아."
주말이면 남편과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어머니의 핸드폰 기록을 보며 어머니의 사회생활을 짐작한다.
"어머니, 여기 핸드폰 기록에 보니까 어제 00아주머니랑 통화하셨네요, 무슨 얘기 하셨어요?"
"통화했냐? 모르겄다. 난 기억이 안 난다."
내 질문에 대한 어머니의 답변은 늘 이런 식이다. '몰라'로 일관되는 말은 나에게 뭔가 아득한 감정을 일게한다.
어머니의 심장병으로 인한 치명적인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요즘 부쩍 더 숨이 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신다. 밥을 먹다가도 의자에 기대 잠시 멈추고 눈을 꼬옥 감는다. 음식을 먹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얼굴에 인상을 쓰고 '아이고, 숨차라'라는 말을 되뇌신다.
한번은 옆집에 놀러 갔다가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얘야, 내가 이렇게 숨이 찬데 어떻게 해야 하냐?"
전화기 너머로 옆집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숨이 찬데 약을 먹어야지. 뭔 약이 있겄지."
그런데 당장 호흡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약은 따로 없다. 나는 좀 누워 계셔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이런 어머니의 상태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의 권유로 어머니를 도와줄 요양 보호사 방문 서비스를 신청해 보기로 했다. 문제는 요양 등급을 받아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요일에 어머니와 외식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엄마, 며칠 있다가 엄마 상태를 체크하러 조사관이 나올 텐데 그때 엄마가 잘 해야 등급을 받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엄마 혼자 생활하기 힘들잖아. 등급을 받으면 엄마 밥도 챙겨주고 청소도 해주고 말벗도 해주니까 좋겠지? 그런 서비스를 받으려면 엄마가 잘 해야 해요. 조사관 앞에서 잘난 체한다고 똑똑하게 굴면 안 된다고요."
어머니는 젊은 시절 직업 군인인 남편을 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다. 늘 낯선 곳에 적응하며 어우러져야 했고, 그런 이유로 눈치, 아부, 가식이 사교적인 성격 위에 덧입혀진 듯하다.
며칠 후 조사관님이 좀 있다 방문한다고 전화를 주셨다. 내가 가 있을 상황이 안되어 어머니 동네 지인에게 같이 좀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머니, 30분 후에 조사관이 어머니 상태 보러 오대요. 어머니 가끔 화장실도 기어서 가고 맨날 숨 차하시잖아요. 기억도 잘 못하고. 밥도 못해 드시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보이시면 돼요. 잘 하는 척하지 마시고. 알겠죠?"
그리고 얼마 후 그 지인분이 전화를 주셨다.
"조사관 좀 전에 왔다 갔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상태가 너무 안 좋으시네. 문도 기어 나와서 열어주고 이야기 도중 자꾸 숨차고 가슴이 아프다고 가슴을 부여잡아요. 병원 예약 날까지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 지금 구급차 불러서 응급실로 가야 될 거 같은데."
이 말에 나는 어머니의 동작과 표정을 떠올리면서 절로 웃음이 났다. '역시 우리 어머니 있는 그대로 잘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척박한 환경에서 억척스레 삶을 일구며 쌓인 경험들이 체화된 것일까? 그 체화된 것들이 치매를 뚫고 필요한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무기처럼 튀어나오는 걸까? 어머니의 강한 생활력은 치매도 넘어선다.
어머니의 생활 범위는 집, 엘리베이터, 1층 경로당, 근처 벤치가 전부다. 숨이 차서 움직이기가 힘드니 소파 앞에 위치한 어머니 전용, 1인용 전기장판에 누워계시는 시간이 많다. 그토록 사교적이고, 수다스럽고, 이웃이 좋아 이 나무 저 나무 놀러 다니던 나무늘보가 이제는 이동도 않고 한 나무에만 누워서 텔레비전만 본다.
다행히 어머니는 5등급 판정을 받았다. 요양보호사 님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와서 세 시간씩 어머니를 돕는다.
"보호사님, 집안 일은 적당히 하셔도 되니까 우리 어머니 말 동무 좀 많이 해주세요."
나는 보호사님께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주문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