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 달 내내 꽃타령을 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열매 타령을 한다.
아침식사를 챙기는데 사서 먹던 초고추장이 바닥이 났다. 손수 초고추장을 만들려고 보니 매실액도 간당간당하다. 난 요리에서 단맛이 필요할 때 몸에 안 좋다는 흰색 설탕 대신 매실액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매실액을 작은 용기에 소분하여 냉장고에 두고 쓴다.
필요는 일을 낳는 법. 이 매실청 덕분에 내 오전의 일부는 예정에 없던 집안 살림으로 채워졌다. 연쇄적으로 할 일들이 뒤따랐다.
우리 집 베란다에 일 년 동안 방치하다시피 놔둔 사연 있는? 매실청을 부엌으로 가져왔다. 작년 6월에 흰 설탕에 재워놓고 한동안 온통 내 신경을 사로잡았던, '주어야 할 게 많은' 아이였다. 곰팡이인지 모를 하얀 것이 한 겹 껴서 거두어 '주기'도 하고, 가스도 배출해 '주고', 밑바닥에 가라앉은 설탕도 저어'주거나' 흔들어 '주며' 자주 보살폈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을 거쳐 다시 봄이 되어 일주년 생일이 다가오는 아이다.
쪼그라든 열매를 체에 걸러내고 액만 분리시켜 유리병에 담는다. 우선 먹을 것은 작은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고 큰 병은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려고 냉장고 뚜껑을 열었다. 김치, 된장, 고추장, 쌀 등이 담긴 통들을 재배치하려고 꺼내다 보니 바닥에 김칫 국물이 흘러 있다. 10킬로그램 용량 정도의 유리병도 보인다. 무겁고 너무 커서 부담스러운 이 유리병에는 또 다른 매실액이 담겨있다. 시어머니가 두 해도 더 전에 담갔던 것인데 치매로 인해 더 이상 요리를 못하셔서 내가 가져온 것이다. 모두 힘겹게 꺼내고 나서 바닥에 흘린 국물을 닦아냈다. 통 밑바닥에 묻은 국물도 닦아서 요리조리 정리를 해서 다시 넣었다.
어머니는 작년에 매실을 두 번이나 사서 나를 곤란하게 했다.
"어머니, 이거 웬 매실이에요?" 베란다에 가 보니 초록 초록 싱싱한 매실들이 푸른 그물망 안에 들어차 있다.
"응, 내가 매실청 담그려고 경로당에서 샀나 보다. 거기 맨날 그렇게 물건을 가져다 파는 사람들이 몇 명 있거든."
"돈은 주셨어요?"
"아니, 우선 외상으로 하고 내 연금 나오는 날 준다고 했다."
"얼만데요?"
"모르겄다."
"어머니 작년에 담근 것도 많은데 또 사셨어요? 이걸 어머니가 몸도 안 좋은데 어떻게 담그시게요? 제가 가져가서 담글게요. 그리고 외상으로 물건 사지 말라고 했잖아요. 기억도 못 하시면서 자꾸 외상을 달아 놓으면 어떡해요."
이런 잔소리는 헛수고일 뿐이었다. 자식들은 이런 일이 닥칠 때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끊임없이 화도 내고 당부도 하고 애걸도 했다. 우리는 치매 앞에 늘 패자였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식재료 등을 살 때 주변 사람들과 외상거래를 많이 하셨다. 그래서 외상 짓는 문화를 여전히 자연스럽게 여기시나 보다. 기억도 못 하는 외상값이 자식들의 지갑에서 빠져나갔다.
베란다에서 매실청 담을 플라스틱 통 한 개와 유리병 두 개를 챙겼다. 크고 무거운 유리병 하나에는 작년 요맘때 담근 매실청이 그대로 방치된 채 푸른 비닐에 덮여있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두 분은 매실청을 물에 타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수시로 드시곤 했다. 난 너무 단 거 많이 드시면 안 좋다며 어머니께 잔소리를 해대곤 했었다.
매실을 집에 가지고 와서 꼭지를 따고 씻어서 소쿠리에 건져냈다. 물기를 말린 후 통에다 매실 한 층, 설탕 한 층을 켜켜이 쌓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어머니 댁에 갔다. 부족한 것이 있나 살펴보려고 김치냉장고 문을 열었다.
'으악, 또 매실이다.' 매실이 나를 무섭게 노려 보는 것 같았다. 이번 매실은 지난번 매실보다 크고, 노랗게 익은 것도 있다. 냉장고에 오래 두었는지 부분 부분 살짝 얼은 데다가 터지고 으깨져서 망 사이로 즙이 흐른다. 어머니의 기억들이 터지고 뭉개져서 흘러내린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나 쉬지 말라고 자꾸 일거리를 만드시네. 어머니, 이걸 또 사셨어요? 지난번에도 사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러냐? 경로당에 그 여자들이 자꾸 사라고 해서. 그이들도 사줘야 좋아라 하지, 안 사주면 어울리지도 못해요."
이 말에 남편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니, 그런다고 자꾸 사? 그럴 거면 경로당에 가지도 마요. 엄마 정신 좀 차리셔. 기억도 못 하는 사람한테 자꾸 팔아먹으려는 이놈의 인간들도 나쁘네. 그럼 엄마도 사지만 말고 우리 것도 뭐라도 좀 가져다가 팔아와 봐요. 응?"
남편은 화도 냈다가 농담도 했다가 황당함에 허우적거린다. 어머니와 나는 일을 무마시키려 소리 내 웃었다.
두 번째 매실을 집으로 가져와 또 매실청을 담갔다. 너무 짓물러진 것은 버리고 이번에는 몸에 덜 해롭다는 원당을 사서 넣었다. 노랗게 잘 익은 매실 향이 상큼하게 뿜어져 나온다. 어머니의 초록 초록했던 지난날들이 황색 가루에 한 겹 한 겹 묻혀가는 듯했다. 탐스러운 열매들 사이를 치매 가루가 촘촘히 파고든다. 이 누런 가루는 어머니의 기억들을 녹여내어 쭈글쭈글한 메마르고 가난한 뇌로 만들어 버릴 게다.
어쨌거나 그 해는 매실청이 풍년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사연만큼이나 무거운 유리병에 이것을 잘 담아서 내가 좋아하는 셋째 언니에게 주었다.
"언니, 흰 설탕에 재운 건 내가 먹을게. 언니는 특별히 건강식으로 담근 이거 먹어. 담는데 매실이 잘 익어서 그런지 향이 너무 좋더라. 잘 숙성시켜서 먹어 봐."
그렇게 사연 있는 매실청은 일 년 전 언니에게로 갔다.
어머니를 보며 치매가 정말 무서운 병임을 실감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괴물이 한 사람을 잡아먹는다. 이것을 지켜보는 가족은 괴물의 횡포를 감당하며 불쌍해하고 안타깝게 바라만 볼 뿐이다.
사람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존재한다는 의미다. 기억이 끊어져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사람과의 추억도 공유 못한다면 연대가 끊어진다. 연대가 끊어지고 고립이 되면 그냥 먹고, 자고, 배출하는 생존 본능에만 따르는 짐승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 사이는 서로 공유되는 기억을 발판 삼아 소통과 공감이 가능하다.
지난번 검사에서 다행히도 어머니의 상태는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부디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했던 기억의 끈을 끝까지 붙들고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