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편, 삶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내 이야기를 할 때, ‘내가 한 일’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더 많이 말하곤 했다. 내 삶을 내가 주도하기보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휩쓸려가는 사람이었다. 그 무심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로.
하지만 어느 날, 한 문장이 나를 깨웠다.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나도 이제는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이끄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 한 편. 아무리 피곤해도, 쓸 말이 없어도, 무언가 한 줄이라도 끄적인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내 하루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에겐 글쓰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 이리저리 재는 성격 탓에 ‘쓸까 말까’, ‘이 글이 괜찮을까?’부터 고민했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마주한 몇 문장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쓰레기 글이라도 써라.”
“행동부터 하고 생각하라.”
“그냥 써라.”
이런 조언들이 내 마음을 이끌었다. 결국 나는 글쓰기 챌린지에 신청했고, 매일 쓴다는 장치를 걸어두자 비로소 내 삶의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을 가다 보니 일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치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감정의 결이 더 섬세하게 느껴졌다. 포스팅한 내 글에 조금씩 반응이 왔다. 누군가 댓글을 남기고, 공감 버튼을 눌러줄 때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매일 쓴다는 건 마치 운동선수의 지루한 반복의 시간과도 같다. 야구에서 투수가 하나의 동작을 몸에 베게 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듯, 글쓰기에도 매일의 반복과 정성이 필요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들은 무엇을 써야 할지 소재를 찾는데서부터 막막한 시간들을 겪는다. 문장 하나를 쓰는데도 삐걱거린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매일이라는 시간을 쌓아가다 보면 피아노 연주자가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쓰는 사람은 자판 위에서 손끝이 춤을 추게 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집중하면서 생각의 흐름과 감정의 결이 점차 정교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결국 ‘매일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투수가 매일 던지고 또 던져야 명투수가 되듯, 작가도 매일 써야 '글 감각'을 얻는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글을 쓰는 이 시간을 긍정확언의 시간처럼 여긴다. 아침 글쓰기는 하루를 여는 나만의 의식이 되어간다.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삶을 미리 살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 나는 정신이라는 강력한 힘을 믿게 된다. 육체가 정신을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육체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이다. 꼭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깨달음에서 오는 인간의 강력한 의지는 육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현재로 불러온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자신도 바꿔 버린다. 정신이 주도하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 하나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소실점 하나에 모두 끌어다 놓는다.
매일 글을 쓰는 동안, 헛된 욕망도 두려움도 점점 작아졌다. 글을 쓰며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처 난 곳이 치유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그저 좋아서 쓰는 행위가 되고 평온한 마음이 찾아온다.
글쓰기는 여전히 고통이 따르지만 운동할 때의 희열이 느껴지는 고통이다. 매일 하는 운동처럼 글쓰기도 나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평생 운동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처럼 글쓰기도 오늘만 쓰는 것이 아니라 평생 씀으로써 건강한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이제는 안다.
글쓰기는 내가 살아 있는 방식 중 하나라는 걸.
매일 쓰는 이 행위가 나를 더 나답게 만들고 있다는 걸.
당신은 오늘,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하루를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단 한 줄이라도 써보자.
짧아도 좋고, 서툴러도 괜찮다.
그 한 줄이 당신의 삶을 조금 바꾸고, 오늘을 기억하게 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