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쓴다
글로 붙들어두고 싶은 순간이 가끔 있다.
아니, 너무 많다.
감성이 자랄수록, 관찰이 깊어질수록, 삶이 풍성 해질수록
섬세한 눈을 통해 바라본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되어 찾아온다.
지나간 과거도, 스쳐 가는 현재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도
어느새 나의 시선에 머물고, 문장이 된다.
나는 안다.
글이 나를 부르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특별한 사건도, 거창한 주제가 아님에도
문득 마음 한가운데서 ‘지금 이걸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울림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가 주저하지 않고 노트북을 연다.
글이 나를 쓰기 시작한다.
책 속에서 오렌지 한 알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
빛과 색채에 매료된 화가의 열정을 만났던 전시회,
어느 봄날 벚꽃 잎이 날리는 광경에서 자연의 순리를 맞닥뜨리는 순간,
바람에 나부끼는 측백나무의 작은 속삭임에 미소 짓는 내 모습,
짧은 순간이지만 신을 마주한 느낌이 든다.
빨래를 개다 남편의 해진 양말을 보고 그의 고단한 하루에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어머니와 짜장면을 먹고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기억의 강 저편에 서 있는 그녀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 역사의 현장 속을 힘겹게 걸어오신 아버지의 인생을 듣고 손을 잡아 드린다.
입대한 아들이 남긴 빈방을 바라보며 헛헛함에 주저앉는다.
그냥 지나치지 못할 생활 속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 마음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글은 내게 있어 기록이자 기도다.
하루라는 찰나를 붙잡아 두는 주문이고,
내 마음을 통과한 삶의 조각을 정성껏 옮기는 의식이다.
가끔은 글쓰기 창고를 서성거린다.
단어는 도망치고, 문장은 숨어 있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반짝일 때,
새로운 알 하나가 나에게로 또르르 굴러온다.
그때의 감각은 도파민처럼 짜릿하고,
글을 낳는 고통은 즐거운 출산처럼 다가온다.
오늘도 나는 그 알 주변을 맴돈다.
언젠가 부화할 이야기를 위해, 맴맴맴.
글은 나에게 일기장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여는 창이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는 조용한 쪽지다.
그러니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나는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 순간은 나의 감정이 가장 투명하게 살아 있는 순간이기에.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그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 곧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혹시 지금, 당신도 뭔가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그건 당신 안의 어떤 진심이 깨어났다는 뜻이다.
한 줄이면 충분하다.
글이 당신을 부를 때,
그저 마음을 따라 적기 시작하면 된다.
"어떤 이야기든 편견 없이 빨아들이는 커다란 귀, 작은 차이도 구별해 내는 섬세한 귀가 있는 사람이 작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세상에 나는 온갖 재료에 민감한 요리사처럼 세상에 떠다니는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직업이 작가라고 생각하니 정말 잘 들어야겠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中
새벽 어스름 속
글 창고를 서성거린다
맴맴맴
너의 주위를 맴도는 소리
알을 툭툭 건드려 본다
오늘은 이 알을 부화시켜 볼까?
아니야, 계절에 안 어울려
그럼 이 알로?
아니야, 아직 준비가 안되었어
이 알은 어때?
그건 어제도 탄생시킨 아이인걸
숙성을 기다리는 알들을 다시 조용히 넣어 둔다
이 작품에 기대어 볼까?
저 어른의 말씀을 옮겨다 놓아 볼까?
마음을 사로잡았던 메모들을 들추어 본다.
시간은 흐른다.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흰 여백에 글자를 새겨본다.
순간, 새로운 알 하나가 나에게로 굴러왔다
그래 너로구나!
흥분,
몰입,
샘솟는 도파민
요리조리 잘 씻기고 주물러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고통스럽고도 즐거운 일!
오늘도 알 주변을 맴맴맴
맴돈다.
<글쓰기 유희> by 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