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행동이 먼저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글을 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처가 없는 인생은 없기에 누구나 글을 쓰면 좋겠다.
글쓰기가 처음이고 서툴다면 쓰레기 글이라도 써라. 자기 자신을 꺼내보는 연습, 표현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짧은 글이라도 자주 써서 먼저 노트북 자판과 화면에 익숙해지도록 하자.
많이 넘어져 봐야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 오류 투성이인 쓰레기 글이라도 자주 써봐야 제대로 된 글을 쓰게 된다. 쓰레기 글도 나중에 잘 다듬으면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다.
예전의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이런 고민들을 했다.
‘이게 쓸 만한 글인가?’
‘너무 사적인 나만의 이야기를 써도 될까?’
'가족들이 자기 이야기 썼다고 뭐라 하면 어떡하지?'
'나만 재미있으면 어떡하지?'
'내 얘기를 하기가 부끄러워.'
이런 온갖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로 쓰는 것을 주저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부터 막히기 일쑤였다. 완벽하지 않으면 쓸 수 없을 것 같았고, 짧은 글을 쓰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로그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쓰레기 글이라도 써라.”
“행동부터 하고 생각하라.”
“생각났을 때 써라.”
나는 그 당시 너무 신중해서 실행도 못하고 생각만 하다 그치는 내가 싫었다. 복잡하게 머릿속이 뒤엉키는 것도 짜증스러웠다.
한 번은 강연하시는 분에게 내 이야기를 쓰는 게 눈치가 보인다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읽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사람들은 내 글을 돈 주고 보라고 해도 안 읽거든요. 남편도 귀찮아서 안 읽어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웃수도 거의 없는 글쓰기 초보자에게 누가 그리 관심이 있어서 내 글을 읽어 주겠는가?' 나는 그들의 조언들에서 용기를 얻었다. ‘그래, 어차피 안 쓰면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 아무리 완벽한 생각도 써놓지 않으면 허상일 뿐이니까.’
그래서 그날부터 시도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주제가 명확하지 않아도, 글이 내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그냥 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를 썼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걸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이 쌓이고 익숙해지고 재미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못 쓴 글도 나의 일부다.”
글이 쌓일수록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고, 생각과 감정의 결도 더욱 섬세해졌다.
누군가는 매일 글을 쓴다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매일 쓰면 쓸 게 있나요?”
“그렇게 자주 쓰면 질리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안다. ‘글이 잘 써지는 날’보다 ‘그럼에도 쓴 날’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나는 글쓰기를 운동에 비유하곤 한다. 몸이 안 풀린 날도, 날씨가 나쁜 날도, 피곤한 날도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잘 써지지 않는 날이 진짜 훈련의 날이다.
가끔은 형편없는 글도 써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 너무 흔해 빠진 글, 오탈자가 잔뜩인 글. 하지만 그런 글을 써야만 다음 글이 가능하다. 나쁜 글도 써야 좋은 글이 찾아온다.
며칠 전 한 강연에서 들었던 문구 하나가 생각난다.
"낯선 곳에 가면, 내가 살아진다.
익숙한 곳에 머물면 내가 사라진다."
가만히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넓은 곳으로 나아가듯이 익숙한 곳에 머물면 마음이 편하지만 변화가 없다. 낯선 곳에 가면 몸과 마음이 불편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우쳐 성장할 수 있다. 날마다 새롭고 낯선 글쓰기의 세계에서 불편한 변화에 익숙해져 보자.
또한 조화와 생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람이 불어도 조화는 가만히 있지만 생화는 온몸을 흔든다. 그 쉼 없는 흔들림으로 생화는 변화하여 자신의 소임을 다 한다.
이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귀찮도록 흔들어댈 때 자신의 나아갈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당신은 고인 물이 될 것인가, 흐르는 물이 될 것인가?
조화가 될 것인가, 생화가 될 것인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