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채용전략공개 #장애고용현상황 #아무도관심없는작가소개
난 내일모레 마흔 살이 된다. MZ세대의 끝에 걸려 있긴 하지만 솔직히 MZ보다는 ‘까라는 깠던’ 시절에 일을 배웠다. 홍보 및 콘텐츠 업무를 10여 년째하고 있다. 지금은 회사 내에서 작은 책임을 3년 정도 맡고 있다. 나 말고 완전 MZ세대들로 점령된 우리 파트 내에서 대충 말 통하는 아저씨로 조용히 지내려고 노력한다. 근데 가면은 오래 쓰기 힘들다. 자신의 일에 최선의 노력을 쏟지 않는 것을 보는 순간, 가면을 벗고 '꼰대'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
회사 사정상 장애인 채용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가깝게 지내는 HR부서원에게 외부, 내부적으로 압박이 있다고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파트에서 장애인 채용을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이렇게 장애인 채용이 시작됐다.
솔직히 시작은 '장애채용'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그냥 위에서 “까라고 했으니 까자”였다. 근데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고 싶었다. 우리 회사의 첫 장애인 공개채용이다 보니 좋은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K직장인의 '최선병'이 또 발동한 거다. 근데 좋은 장애인 분이 들어오면 결국 함께 일하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일단 우리의 목표는 ‘콘텐츠 제작을 할 수 있는, 또는 관심이라도 있는 장애인 1명’을 채용하는 거였다. ‘콘텐츠 제작할 수 있는’ 부분은 콘텐츠 제작 레퍼런스를 보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데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있다는 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그래서 관련 학과도 아니고, 관련 경력이 없어도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보거나 제작툴을 배워 본 적 있는 분'이라면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있다고 판단하기로 했다.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있다. =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보거나 제작툴을 배워 본 적 있다.
채용 소개글(JD:job description)을 직접 작성했다. HR에서 전형적으로 쓰는 잘 정돈된 채용 문구들이 존재했지만 우리 회사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채용이었기 때문에 새롭게 쓰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개글에서는 특별히 ‘콘텐츠 제작’이라는 허들이 최대한 낮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한 문장 한 문장 고심하며 써 내려갔다.
‘콘텐츠 제작 = 즐거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가질 수 있는 분이라는 저희 파트와 잘 맞을 것 같아요. 저희는 좋은 동료들과 함께 ‘업무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성장하며 자랑스러운 결과물을 쌓아갈 팀원을 찾습니다.
‘무조건 알아서 혼자’ 해야 하는 업무 환경은 아닙니다. 부족한 업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후 점층적인 역할 확대를 통해 충분히 준비가 된 상황에서 주도적인 작업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 밖에 회사 HR과도 채용 전략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장애 채용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전문가도 초빙해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장애 채용 전문가의 우리 회사에 대한 의견은 홍보 전략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장애 채용 전문가 코멘트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장애인 분이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들 잘 찾는 전략이 필요하다. 장점은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고 연봉 수준은 장애채용 시장에서는 비교적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잘 알리는 것이 채용 성공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고심해서 3가지 홍보 루트를 짰다.
첫 번째는 사람인, 잡코리아 등 많이 알려진 채용 사이트에 구직글을 올리는 것.
두 번째는 장애를 가진 구직자분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를 공략하는 것. 예를 들어 [삼.장.사] 네이버 카페, 장애고용공단 게시판 등.
세 번째는 대학교 취업센터나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직접 추천을 해주시거나 게시판에 채용 공고를 올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삼.장.사 : '삼십만 장애인이 취업하는 그날까지 준비하는 사람들'의 줄인 말
이 세 가지 루트 중에 가장 기대했던 건 대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추천을 받는 것이었다. 왠지 숨겨져 있는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욕이 넘쳐났다. 뭔가 엄청난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채용이 시작되자마자 회사 HR 담당자와 나는 여러 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와 취업지원센터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서울의 웬만한 대학에는 다 연락을 돌렸고 특히 장애학생지원이 좋다고 소문난 곳을 추가적으로 발굴해 연락을 했다. 없는 인맥 있는 인맥 다 동원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대학 교직원들에게도 일일이 연락해 홍보를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물론 더 기다려봐야겠지만 대학교 취업센터에서는 장애학생에 대한 거의 정보가 없었고,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본인들의 역할을 학교생활을 돕는 거지 취업까지는 아니라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쪽에서는 저쪽으로 전화해 보라 하고, 저쪽에서는 이쪽으로 전화해 보라 하고. 말로만 듣던 전화 돌리기 공격에 정신이 잠시 아찔했다. 우리가 보물을 찾고 있는 건지 아님 폭탄을 찾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였다.
일단 대학교에서는 장애학생보다는 비장애학생의 취업이 우선인 것 같았다. 당연히 대학에서는 비장애인 숫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장애인 취준생들도 자연스럽게 학교를 그리 의지하지 않게 됐고. 학교와 장애학생 사이에서는 무신경과 포기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업도 문제다. 기업에서는 일단 장애인을 정규직으로 뽑는 비중이 무지하게 낫다. 장애인 채용 지원자들의 서류 보면 적은 연차에도 불구하고 이직이 많은데 대부분이 ‘계약만료’로 인한 이직이다. 기업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정부의 장애고용정책을 충족시키기 위해 1~2년 계약직으로만 채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입사해서도 장애 전형으로 들어오면 연봉 테이블이 비장애 직원들에 비해 훨씬 낫게 시작한다. 장애인 직원에게는 승진의 유리천장도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 직급 이상 승진이 불가한 경우도 상당히 많다.
우리 장애인 채용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뭔가 더 쓸 내용들이 있지만 내일이 장애고용 첫 면접날이다. 내일 4명의 면접이 예정돼 있다. 빨리 자고 일어나서 회사에서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 한다. 다음은 생생한 장애고용 면접 후기를 가지고 돌아오겠다.
I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