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박스(2018) / 수잔 비에르
볼 수 있기에 볼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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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나타난 정체불명의 ‘그것’을 보면 사람들은 자살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이 망한 상태에서 5년 넘게 생존한 멜로리, 두 아이와 함께 눈을 가리고 세상에 나와 미래를 찾아 떠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위한 설정인 ‘그것’은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그 설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보게 된다면 환상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는 것, 정신병자들은 보아도 목숨을 끊지 않고 아름답다며 찬양하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야기는 인물들의 시각, 정확히는 멜로리의 입장에서 진행이 된다. 따라서 관객은 극 중 인물들과 함께 미궁으로 빠져 그 공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더욱 매력적인 점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이 재앙에서 면역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모험 끝에 멜로리 일행이 몸을 맡기고 안정된 삶을 찾게 된 공간도 시각장애인 학교이다. 시각장애인들은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힘든 약자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시각이 제한될 때는 오히려 강점을 지니게 된다. 볼 수 있음에도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계속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볼 수 없기에 타인에 대한 아낌없는 포용을 보여주는 것도 그 일부다. 주인공인 멜로리 일행 역시 그렇게 생존하게 된다. 어쩌면 영화는 대놓고 말하고 있다, 시각의 맹점을.
시각, 사물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기본적인 자세. 어쩌면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에 대상을 진정으로 관찰하고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의 역작이다. 깊고도 탁한 느낌의 영화. 서스펜스의 비중이 강하지만 서스펜스 그 자체보다는 내포된 의미에 더욱 중점을 둔 듯하다. 철학적 의미를 얼마든지 대입해서 감상할 수 있을 듯. 원작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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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