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서비스 PM이 소개팅 서비스에서 배운 것
이전에 세금 서비스를 만들었다.
빅플레이어 경쟁자가 없었다. 세상에 없던 서비스. 지금은 경쟁자가 등장했지만, 그때는 우리뿐이었다.
환급이라는 개념, 세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희미했다. "나도 돌려받을 수 있어?"부터 시작했다.
서비스가 커져가면서 유저들의 세금, 환급에 대한 이해도도 올라갔다. 유저들과 함께 성장했다.
속도감 있게 뭔가를 하면 돈이 됐다. 숫자라는 이해관계. 디테일한 서비스 전략보다 명확한 효용이 중요했다. "이거 하면 000,000원 돌려받을 수 있어요." 이만큼 명확하고 강력한 설득 방법이 없었다.
일단 해보고 방향성을 보자. 이게 통했다.
지금은 소개팅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Zero to One이라 생각했다. 일단 해보자. 빠르게 만들고 방향성 보자. 이전에 통했던 방식.
안 먹혔다.
수많은 서비스들이 이미 점령하고 있는 시장이다.
없던 서비스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이미 있는 시장에서 유저의 니즈를 니치하게 발견하고, 그걸 서비스로 풀면서 새로운 generation 서비스를 정의해야 했다. 기존 시장 안에서 개척하는 싸움.
세금 서비스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여기선 뭘 하나 하려면 설득을 장황하게 해야 했다. 맥락에서 비어있는 부분이 없는 논리로.
왜 그런가 생각해봤다. 설득시키는 분들의 백그라운드가 달랐다. 전략 컨설턴트 출신. 그리고 이 회사는 2억 명 유저를 가진 서비스를 다뤘던 곳에서의 신사업이었던 것이다.
나와 함께하는 팀원들은 이미 20개의 소개팅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그룹 내에서 N개의 소개팅 서비스를 경험해본 도메인 선배님들이다.
도메인 지식이 없었다. 내가 아는 방식으로 다가갔다. 어려웠다.
소개팅 서비스는 세그먼트를 정말 세분화해서 나눌 수 있었다. 성별, 나이, 지역, 선호도, 활동성... 소개팅 서비스에서 봐야 하는 매트릭도 처음에 정의하기 어려웠다.
간편인증. 세금 서비스에서는 "쉽고 빠르다"는 효용이었다. 소개팅 서비스에서는 "아무나 못 들어온다"는 신뢰였다.
같은 기능인데 완전히 다른 서비스 경험을 유저에게 제공했다.
소개팅 서비스는 감도가 높은 서비스다. 작은 UX 하나, 문구 하나가 느낌을 바꾼다. 허들이 신뢰의 감각을 만들기도 한다. 허들이 있어서 이 서비스를 선택하기도 한다.
소개팅은 개인적인 사생활의 영역이다. 그래서 유저들은 "나는 어떤 서비스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가치관을 가진 유저"라고 느낀다. 서비스가 곧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어떤 앱을 쓰는지가 나를 정의하는 거다.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감각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결국 여기서 만난 상대방과의 경험이 서비스에 랩핑되기도 했다. 좋은 사람 만나면 좋은 앱이 되고, 별로인 사람 만나면 별로인 앱이 된다.
근데 나는 단순 효용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만남이 성사되는 것. 그것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만 고민했다. "이거 쓰면 매칭률 올라가요." 세금 서비스 때처럼.
서비스 여정에서 유저가 느끼는 경험. 그걸 놓치고 있었다.
틀렸다. 여기선 그게 아니었다.
이 회사를 이해하고, 내 서비스를 잘 드라이빙하기 위해서. 내가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글들을 분석했다. 기존에 어떤 식으로 본인의 의견을 어필하는지 봤다. 본인들한테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패턴이 보였다. 설득의 방법론을 프로세스화하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Claude랑 붙어 있었다. 내 주장에서 어떤 게 비어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설득할 수 있는 레퍼런스가 있는지. 다양한 방법론으로 고민했다.
도메인마다 싸우는 법이 다르다. 사업의 스테이지마다도 다르다. 조직의 문화마다도 다르다.
이전에 통했던 방식이 지금도 통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겸손하게 배우고, 빠르게 적응하고, 다시 싸우는 법을 익히는 것이 새로운 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