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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Aug 23. 2022

Via Negroli 2, Milano

삼계탕 파티, 폰시와 마리아의 하룻밤



이 날 저녁, 우리 집에서는 ‘한국 음식’ 파티가 약속되어있었다.


플랫 메이트와 폰시뿐 아니라 여행을 함께한 프랑스인 친구들과 추가적으로 몇몇 프랑스 교환학생들과 사야가 참여하기로 되어있었다.


낮에 사야와 차이나타운에 들러 장을 봐왔고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폰시는 보조 셰프였다.


이 날의 메뉴는 야채전과 삼계탕이었다.


삼계탕을 싫어할 수도 있을 것을 고려해 부담 없는 ‘Korean Pancake’을 만들기로 했다.


닭을 구석구석 잘 씻기고 똥고집도 잘라낸 후 야채 육수를 우린 후 닭 두 마리를 푹 담갔다. 그 속에 쌀가루도 넣어 그럴듯하게 만들려 했다.







작은 주방에서 동시에 두 가지 요리를 만드느라 정신없었지만, 폰시가 틈틈이 설거지와 정리를 해준 덕에 손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 즈음,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감자 요리를 들고 왔다.


거실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마커스 생일파티만큼은 아니었지만 2/3는 되는 것 같았다. 식탁 벤치 의자에 각 네 명이 옹기종기 붙어 앉았고 식탁 위는 이미 술로 가득했다.


프랑스어, 이태리어, 영어. 각 국의 언어들로 왁자지껄 해졌다.


사야가 웃으며 주방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지호! 뭐 만드는 거야? 우와! 삼계탕! 나 이거 알아! 정말 맛있겠다. 한국음식 먹고 싶었는데, 우와.”


기뻐하는 사야를 보니 혹시나 친구들이 좋아해 주지 않을까 하던 불안감이 녹아내렸다.


“지호 그리고 내가 김치 가져왔어. 히히”


사야가 작은 김치 팩 두 개를 흔들어 보였다.


“오! 사야 너 김치 먹을 줄 알아?”

“응. 일본에서도 완전 잘 챙겨 먹었는 걸. 한국 김치 정말 좋아.”


사야 덕에 몇 개월 동안 먹지도 보지도 못한 김치를 보게 되었다. 그 냄새는 정말 진했다. 한국식 피클이라기에는 젓갈 냄새가 진동하며 사야를 제외한 모두가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물며 음식 장벽이 매우 낮은 폰시조차도 김치는 시도하지 못했다.


음식이 완성되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다들 새로운 비주얼에 신기해했다.


“이건 코리안 치킨 수프야. 그리고 이건 코리안 팬케이크!”


추석에 먹은 잡채나 제육볶음만큼의 반응은 아니었지만 다들 잘 먹어주었다.


“근데 지호, 저거는 뭐야? 으.. 냄새가 이상해.”


“아, 김치라고 한국식 피클인데. 하하 그런가.”


머쓱해하는 내 옆에서 사야는 되려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김치 봉지를 집어 본인 앞으로 가져갔다.

한 움큼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웃어 보였다.


“왜? 정말 맛있는데? 나는 김치 좋아해.”


사야 덕분에 모두 별 말 않고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후 남은 김치는 거실에 있는 냉장고에 넣어놓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몇 병을 비웠는지 모르겠다. 식탁을 정리하고 조금 마시다 피곤해져 자정이 되기 전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이 시끄러웠지만 금세 잠에 들었다.


이날도 다들 걸 하게 취해 집에 돌아갔고 새로운 커플이 탄생했다. 여행을 함께 했던 레아와 그녀의 친구들과 동행한 프랑인 남학생이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키가 작고 귀엽게 잘생긴 금발 소년이었다. 폰시에 의하면 술을 마시다 둘이 어두운 복도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몇 번 둘을 스쳐 지나갔는데 남자는 레아에게 푹 빠져있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로맨스.


며칠 후, 마커스는 강의를 일찍 마치고 폰시 네로 넘어가 있었다. 폰시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 이모에게 연애 상담을 한 모양이었다. 이모는 진지하게 마커스의 흔들리는 마음을 들어주며 위로해주었던 것 같다. 폰시네 이모 가족을 위해 한식과 독일식 저녁을 요리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이것저것 잔뜩 사와 시에스타로부터 폰시를 끌어 내 저녁을 준비했다. 닭볶음탕과 야채전을 준비했는데, 우리 집의 4배는 되는 주방 크기 덕분에 마커스와 함께 요리해도 공간이 넉넉했다.


요리에 자부심이 대단한 이태리 가정에게 만들어주는 한식이다 보니 긴장했고 정신이 없었다. 닭볶음탕은 처음 해보는 거여서 혀 끝이 마비될 정도로 끊임없이 간을 보며 한편으로는 야채전을 부쳤다. 그러다 기름 두르는 것을 깜빡하고 반죽을 부어 버렸는데, 뒤늦게 프라이팬 벽면에 기름을 부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전은 새까맣게 타 있었고 은빛 팬이 검정으로 변해있었다. 너무 당황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낑낑거리며 폰시 옷자락을 잡고 끌고 와 상황을 보여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지호.”


상황을 폰시는 웃음을 터트렸다.


“에휴 역시 지호야. 어쩔 수 없지. 이 팬은 버려야겠네. 여기 다른 팬 있어 이거 써.”


“버린다고? 아니야! 버리지만 내가 어떻게든 닦아볼게. 쓸 수 있게 만들게. 미안해..”


“하하 아니야 정말로. 닦지 마! 지금 엄청 뜨거워! 어휴 다칠라.”


어떻게든 팬을 되살려보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폰 시는 두 소매를 걷어올리고 나를 밀어내고 싱크대를 차지했다.


“내가 해볼게. 지호 정말 걱정 말고 저녁 맛있게 만들어줘. 그러면 돼.”


왈가닥인 나와는 달리 마커스는 주방 한구석에서 감자요리를 척척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여차저차 요리를 마무리하고 탄내를 잘 빼낸 후 상을 차렸다. 흰밥에 닭볶음탕 그리고 마커스의 감자요리로 상이 꽉 찼다. 야채전은 결국 상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음식은 충분했다.


다행히 가족들은 맛있게 먹어주었다. 중학생이었던 막내 사촌동생은 밥은 두 그릇이나 비웠고 그 모습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며 집밥을 먹으며 감탄할 때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가족들과 하는 식사는 무척이나 단란했고 밀라노 집에서는 느낄 수 없던 편안함과 제대로 된 저녁 식사라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는 폰시가 담당했다. 우리가 하려 했지만 폰시가 사절하며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다.


주방을 청소하고 셋은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가 소파에 누워 술이나 한 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폰시가 평소와는 달리 무슨 일이 있어 보였다.


“나 지금 마리아랑 연락 중인데…”


“오! 그래도 연락 중이었어?”


“응 근데 마리아가 뭐하냐고, 본인 집 앞에서 보자고 하네?”


“가봐!”


“그래, 당연히 가야지! 언제 만나기로 했는데?”


“지금…?”


“그러면 오늘은 마커스랑 그냥 집 갈게. 어땠는지 알려줘.”


“흠… 알겠어. 하하 내일 놀자.”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흩어져 부른 배를 치며 귀가했다.



다음 날, 강의를 마치고 먼저 폰시를 만났다.


“어떻게 됐어?”


“아… 그냥.”


“뭐야… 뜨거운 밤 보낸 거 아냐?”


“아니? 밤에 마리아 집 앞에서 바로 얘기했거든.”


“뭐라고?”


“나 너랑 자고 싶다고. 근데 연애 같은 생각은 없다고.”


화들짝 놀랐다. 보통 꼬시거나 돌려 말하지 바로 얘기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냥 그렇게 바로 얘기했다고?”


“응. 그게 맞지 않아? 아니면 감정적으로 엮일 수도 있잖아. 나는 전혀 그런 마음은 없거든.”


“뭐… 너 참 대단하다. 여자 입장에서는 상처일 수도 있었겠다.”


“아니야. 잘 얘기했어. 물론 결국 자지는 못했지만. 연락도 안 하고.”


“하하 웃어서 미안한데, 폰시 너는 정말 독특해, 너무 웃겨. 그래, 솔직하게 잘했네. 나중에 얘기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별 수 없지.”


폰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쉽겠다 야. 마리아도 같은 입장일 줄 알았는데.”


“뭐, 별로? 별생각 없었어.”


그렇게 폰시의 로맨스도 터무니없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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