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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Dec 22. 2021

Via Negroli 2, Milano

베르사유에서는 비키니를

셋째 날, 친구가 쉬는 날이었다. 수업이 없어 하루 종일 함께해줄 수 있었다. 도시 내에도 관광지가 많았고 관광지를 제외하고도 가볼 곳이 너무나 많았지만 희수의 적극 추천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가보기로 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거리가 꽤 되었고 관광객들이 많은 장소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움직여야 했다.

시청에 직원들이 출근하기도 채 전에 노트르담 앞의 광장에서 친구와 합류했다. 일찍 도착해 광장에 앉아 마트에 들러 구입한 콜드 파스타 샐러드를 흡입했다. 비둘기들과 노숙자 몇 명 그리고 바쁘게 광장을 지나치는 파리지앵 두세명 정도뿐이었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찬 공기가 맴돌았지만 노오란 가을볕이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저 멀리서 희수가 웃으며 다가왔다.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 같단다. 거리에 앉아 파스타를 먹는 모습이. 일찍 만난 덕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센스 넘치는 친구는 배고플 것을 예상해 크로와상을 사 왔다. 희수에 의하면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크로와상을 만드는 집이라고 했다. 베이커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리가 새겨진 포장지와 고소하고 따뜻한 버터 향기, 그리고 입에서 녹아들어 위를 감싸듯 소화되는 아름다운 맛의 크로와상만큼은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어찌 되었건, 크로와상을 먹으며 베르사유로 향했다.




유럽의 기차역은 티켓을 찍고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다. 탑승하여 직원이 티켓 확인을 하는데, 직원이 채 도착하지 않아 확인받지 않고 도착지에 내리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게다가 자리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입석인 경우가 많아 티켓을 사지 않고 무단으로 승차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걸리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지만 걸리면 어마어마한 벌금을 지불한다며 친구가 경고했다.

당연히 우리는 안전하게(?), 윤리적으로 티켓을 구입해 승차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며 낮은 파란 지붕의 건물들 뿐 아니라 서울과 도쿄에서 보았던 높은 은색과 파란빛 유리로 덮인 신식 건물들이 모인 곳들도 보았다. 파리는 정말 넓은 곳이었다.

베르사유까지는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도중에 몇 개의 정거장에 들렀다. 파리에서 막 벗어난 시점, 장난기 많은 얼굴의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이 승차했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는 아이들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남성 둘이 들어섰다. 승객들은 모두 주섬주섬 티켓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전에 승차했던 아이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맨 앞칸에 탑승한지라 도망갈 곳이 없었고 다음 역에 정차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직원이 우리에게 채 도달하기 전, 정류장에 멈춰 섰다. 아이들은 문 앞에 서 경주 트랙 위에 총성을 기다리는 선수들 마냥 준비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직원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둘은 나머지 승객을 뒤로한 채 추격했다. 아이들은 계단에 도달하기도 전에 붙잡혔고 둘은 울상을 지으며 변명을 늘어놓고 하소연하다 통하지 않자 빌기 시작했다. 직원 둘 중 한 명은 아이들과 남아 벌금 서류를 꺼내 들었고 다른 한 직원은 기차로 돌아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이들에게도 벌금을 가하는 ‘정의로운’ 광경을 보니 티켓을 가지고 있음에도 떨렸다.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되고 직원은 임무를 완수한 듯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옆에 앉은 희수는 혀를 끌끌 차며 ‘무임승차는 안되지.’라고 중얼거렸다.

베르사유 궁전은 기차의 종착역이었다. 즉 기차에 남은 승객의 대부분은 관광객이었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가는데, 꽤 많은 승객들이 있었다.

역에서 궁전까지는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다. 미국 미시간에 살 때 보았던 주택들과 낙엽으로 무성한 가로수들 사이를 걸어갔다. 낙엽을 밟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가로수들은 무척이나 높았고 낙엽 또한 이에 알맞게 크기가 컸다. 아직 낙엽이 무수히 쌓일 정도의 가을은 아니었다. 설레는 나른함이었다. 어릴 적 버스에 내려 에버랜드 입구로 올라가며 느꼈던 순수한 기쁨과 기대감, 설렘 따뜻함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앞은 거대한 (정말 거대한, 내 키의 10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이의 펜스가 쳐져있었고 하나의 문을 통해 입장할 수 있었다. 비자를 받은 학생(친구)과 단기 비자를 승인받은 아트 전공 교환학생은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예술 특히 아트(미술)적으로는 복지나 교육이 잘 되어있는 나라다.

궁전의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바닥, 벽부터 천장까지, 놓치지 않고 금으로 도배되어있었고, 심심할 것 같은 공간에는 가구나 거대한 미술작품으로 장식했다. 게다가 건물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는데, 억만장자라고 해도 이런 집에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천정이 잭과 콩나무의 거인들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높이였고 복도의 넓이는 성인 남성 15명이 양옆으로 나란히 서있을 정도였다. 궁전을 입장하자마자 그 크기와 화려함에 감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끝도 없이 펼쳐지는 화려함에 이내 빨리 질려버리고 지쳐버렸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어차피 옆방으로 가도 금이었고 다른 방으로 가도 금, 복도를 걸어도 금이어서 기대되지 않았다. (무지해서, 단순해서 그렇게밖에 감상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궁전의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그 정원이야 말로 이 공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금도, 유명한 화가가 세심하게 그린 작품들도 정원의 자태에 미치지 못했다. 빨리 실내를 벗어나 정원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베르사유에 한번 와봤다고 했던 희수를 설득시켜 빠르게 내부를 돌고 (다 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정원으로 뛰쳐나갔다. 가을이어서 꽃이 만개해 있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꽃들이 심어져 있었고 대부분 녹색의 풀숲들이 반듯한 모양새를 갖추어 정원을 꾸몄다.


정원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너무 커서 골프카트를 대여해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 놓을 정도다. 가꾸어진 풀숲은 그 높이가 엄청나 내리쬐는 강한 햇살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그늘막을 조성했다.


끝도 없이 걷다 걷다 지칠 때쯤, 그 유명한 인조 호수가 등장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호수는 사방으로 넓은 풀밭이 있고 그 뒤로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호수 옆의 풀밭에 다다랐다. 드문드문 풀밭에 앉거나 누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에 한 서양인 할머니가 홀로 누워계셨는데,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돗자리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는, 온몸으로 베르사유를 받아들이는 광경이었다. 비키니라도 입고 올걸.

우리도 잠시 누워 휴식하기로 했다. 햇살이 무척 강한 데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민소매 하나로 충분한 날씨였다.

한적함. 고요함. 도란도란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한 시간은 족히 보낸 것 같다. 베르사유의 크나큰 공간을 둘러보고, 눈에 담고 감탄하는 것보다 더 값진 시간이었다.

행복했다. 정말로. 무척이나.

할머니처럼 옷을 벗어던지고 풀밭을 뒹굴고 싶었다.

자유로웠다. 시선, 위치, 가족, 친구, 연인, 책임, 해야 하는 일, 돈, 사회, 그 모든 압박으로부터 모두.

신나면 엉덩이를 흔들고는 한다. 저날은 행복이 가득한 엉덩이 춤이었다.


하지만, 허기로 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뭐라도 챙겨 올걸. 싶었지만, 궁전 내 음식은 특별하지도 않고 가격만 비싼 것 같아 도시로 돌아가 식사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은 빨랐다. 기차에서 잠시 낮잠을 청하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도시로 돌아가 나름 맛있다는 식당에서 가서 식사를 했는데, 사진은 남겼지만 그 맛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파리에서 먹었던 음식들 중 바게트와 크로와상 외에는 사실 생각나는 음식이 없다.


이날, 그래도 미대생이잖아 라는 마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들렀다. 엄청 빠르게 둘러보았다. 루브르 박물관은 교과서를 실물로 옮겨놓은 공간이다. 거대한 공간 속에 조금만 걸어가면 수많은 유명 조각상들과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는 크기는 콩알만 한데, 그 앞에 거리를 두어 펜스를 두어 관람객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했다. 그 뒤로 관중들이 자리 잡아 핸드폰으로 줌을 당겨 보아야 할 정도였다. 그럴 거면 구글에 모나리자를 쳐 보지. 그게 훨씬 선명하게 잘 보이겠다. 갤러리의 목적을 상실한 모습이었다. (대단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교과서에서 보았던, 눈썹 없는 희미한 미소의 주인, 모나리자는 스쳐 지나가게 되는 작품이었다.

박물관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가 기억에 남았다.


그럼에도 파리가 정말 부러웠던 점은 세계적인 작품들이, (서구의 것이기는 하나) 그 역사가 한 도시에, 어마어마하게 큰 공간에 멋있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하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게다가 학생일 경우 무료로 관람이 가능해 경험을 통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부럽다.




파리에서의 '거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이면 출국해야 했다. 거리를 걸으며 하늘과 강 건물과 가로수들 지나치는 행인들, 그들의 언어 그리고 표정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았다.

기억나는 이미지 중 하나는 높은 층고의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창틀에 쌓아놓은 화분들. 파리는 상아빛 건물에 싱그러운 연둣빛과 녹색이 곁들여진 싱러그러운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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