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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Dec 26. 2021

Via Negroli 2, Milano

우윳빛깔 구더기와 이탈리아인 마술사

밀라노의 폐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육체는 피곤했지만 꿈같던 파리에서의 시간이 지나가고 고독과 차가운 샤워라는 밀라노의 현실로 돌아왔다. 먼지가 조금 쌓여있었다.

그래도 파리에서 친구가 유럽 환영식을 치러준 덕에 마음이 안정되었고 돌아와서는 조금 더 인간다운 생활을 해보려 했다. 하루에 한 시간은 걷기, 요리해 먹기, 세끼 잘 챙겨 먹기. 딱 그 기본이라도. 시작은 주방 청소였다. 다른 부분들은 나름 꼼꼼하게 청소하고 떠났지만 주방은 정말 쓸 수 있을 정도로만 해놓은 상태였다. 도착하자마자 집안일이었다. 밖에 내놓았던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 했다. 햇볕이 따뜻해 찌꺼기들이 다 익었을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통에서 메주 냄새가 진동해 전방 1미터 내로 다가가기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냄새에서 그치지 않았다. 봉투를 꺼내는 순간.. 그 아래가 뚫려 물이 새어 나왔고 구멍들 사이로 하얀색의 애벌레 비슷한 무언가 들이 꾸물거렸다. 비명을 지르며 헛구역질을 했다. 세탁기를 청소할 때처럼 주저앉아 울상을 지었다. 대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함께해줄 사람도 없었고, 말할 사람도 없었다. 구더기였다. 구더기. 셜록 홈스에 나왔던, 시체 여기저기에서 꾸물거리건 그 구더기. 우유처럼 뽀얗고 촉촉한 구더기. 울며 겨자 먹기, 아니 사약 먹기의 심정으로 통을 들고 쓰레기 수거함으로 달려 나와 눈 꼭 감고 상황을 처치했다. 이 이후로 단 한 번도 음식물 쓰레기를 햇빛이 드리우는 곳에 놓지 않았고 이틀 내로 처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파리에서 돌아온 다음날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플랫 메이트 한 명이 들어왔다. 파리에 다녀온 사이 다들 이미 짐을 가져다 놓은 상태였고 그중 한 명이 돌아왔다.

구성원 중 가장 어린 친구였는데 베니스에서 온 이탈리아인으로 이과생이었고 대학 때문에 밀라노로 온 친구였다. 185는 되어 보였고 덩치도 큰 거구의 남자였다. 친구의 이름은 Simone (시모네), 사이먼이라고 부르라 했지만 끝까지 시모네라고 칭했다. 시모네의 첫인상은 매우 차가웠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집에 새로운 사람이 있어 반가웠고 밀라노에서 지나다니며 본 사람들은 대개 따뜻하고 밝았기 때문에 (관리인을 제외하고) 기대를 가득 안고 ‘ciao!’라며 다가갔다.

시모네는 나를 힐끗 보더니 들은 둥 마는 둥 대답조차 하지 않고 지나쳐갔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드디어 마주한 플랫 메이트가 너무 도도해 조금 상처를 받았지만 영어를 못해서 그러나 보다 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그 이후로 두세 번 더 말을 걸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매번 얼음 같은 반응으로 미끄러져 지나갔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사이로 지내는 게 이곳의 문화인가 싶었다.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생활했다. 그러다 문득, 마음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시모네가 다가왔다.

억양이 조금 있지만 정확한 전달력으로 본인을 소개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거구에 비해 아이 같은 친구였다. 살갑지는 않지만 노력하는 모습에 같이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아침 인사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일주일 전이었다. 도시는 하염없이 걷는 일밖에 없었고 친구가 없던 탓에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Friends’를 보며 시간을 보내던 중 erasmus 채팅방에 알림이 울렸다. Traveling Bar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은 일곱 시까지 정해진 바에서 만나기로 했다. 설레는 동시에 두렵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자주 연락하고 지낸 건 아니지만 이대에서 함께 교환학생을 나온 동생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이태리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느긋하다. 지중해 부근 유럽인들은 대게 시간 개념이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르다. 일곱 시 시작이라던 Traveling Bar, 일곱 시 정각 혹은 그 전후로 모인 학생들은 동양인 그리고 북유럽인 들이었다. 와인 혹은 맥주잔을 들고 자리에 둘러앉아 서로 소개를 하는데 독일인 세명, 중국인 두 명, 일본인 한 명, (나를 포함해) 한국인 세명이 있었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서야 바 앞이 북적북적해지기 시작했다. 바가 작아 거리로 나와 돌아다니며 서로 인사하고 스몰토크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했고 지나가던 행인들과 바에 온 손님들 모두 신분과 관계없이 함께 뒤섞여있었다. (끝없이 볼 키스와 포옹을 나누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각국의 억양이 베인 영어 소리로 가득했고 간간이 스페인어도 들렸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거리가 가까워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느낌이다. 날씨도 문화도 차이가 크지는 않아 부담 없이 많이들 오는 것 같았다.

Traveling Bar에서의 시작은 같은 인종 사람들끼리의 모임이었지만 끝내 루마니아인, 러시아인, 독일인, 스페인 사람들 그리고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유럽 내 다른 몇 국가들의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만난 친구 중 세명이 기억에 남는데 그들의 이름은 미고, 폰시, 그리고 블라드다. 미고는 하얀 얼굴에 짧은 금발머리의 귀엽고 밝은 폴리시 남자아이였다. 폰시는 털이 많은 친구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수염을 가지고 있었고 깊게 들어간 빛나는 갈색 눈에 나와 비슷한 정도의 키의 친구로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에 교환학생 전공이 같았다. 반면 블라드는 의대생이었는데 185가 넘는 건장한 몸에 목청이 좋고 쾌활하며 남녀노소 학생들이 주변에 달라붙는 친구였다.


이 날, 폰시의 첫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난 아시아인들을 구별할 수 있어! 넌 딱 한국인 같아.'


정말 색다른 인종차별이었지만, 그러한 의도는 하나도 없어서인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저 색다른 표현방식이었달까. 한국인이라고 했지만, 맞는 말을 했지만 응? 하며 의아하게 되는...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밤이 깊었고 개개인이었던 학생들 사이에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 앞 거리는 어느새 학생들로 가득해 지나다니기 불편할 정도였다. 술잔이 몸의 일부가 된 채 볼 키스를 나누고 친친(이태리식 짠)을 외치며 돌아다니는 밤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정신이 없었지만 막판에는 거의 미고와 함께 있었다. 미고는 처음 볼 때부터 눈을 피하고 순수하게 웃어 보였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곁을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았다. 이태리는 자정이 넘어가면 마트에서 어떠한 주류도 구입할 수 없다. 해서 자정이 되기 오분, 몇몇 친구들이 마트에 가서 술을 사 오기로 했고 같이 가는 미고를 따라갔다. 바 근처 오분 거리에 마트가 있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황급히 달려가 자정이 되기 일분 전에 도착했다. 급하게 보드카 몇 병과 오렌지 주스 위스키를 매대에 올리고는 카운터 직원에게 시간을 보여주며 어필했다. 그렇게 양손에 봉투 한가득 음료를 들고 나온 음료로 바 앞에서의 파티가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간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 남은 흥 많은 학생들과 이태리 현지인들이 뒤섞여 술을 나누어 마셨다. 어깨동무하거나 길바닥에 앉거나 세워진 차에 기대어 떠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이태리 현지인 두 명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명은 키는 크지 않지만 덩치가 있는 편이었고 다른 한 명은 그에 반해 왜소한 체형이었다. 덩치가 있는 남자는 유쾌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고 억양이 섞였지만 영어를 잘했다. 그는 직업이 마술사라고 했고 세계에서 투어를 할 정도로 나름 유능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고 그때 보았던 서울이 너무 좋아 다시 한번 가고 싶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뒤섞여 있다 보니 한시가 훌쩍 넘었고 남은 학생들은 15에서 20명 정도 되어 보였다. 그때 폰시와 블라드 미고 세명 모두 남아있었고 함께 간 이대 동생도 있었다. 술을 마실대로 마셔 흥이 올랐던 아이들은 2차로 클럽에 간다고 했다. 이름은 ‘Old Fashion’, 실외 클럽으로 나름 팬시 하다고 했다. 하지만 클럽은 집과 반대방향이었고 밀라노가 아직 익숙지 않고 버스와 트램이 끊겨 당장 집에 가는 길도 몰랐던 나는 함께 하자는 미고를 뒤로하고 집을 택했다.


슬슬, 귀가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보이자 집으로 가야 한다는 압박과 부담감이 강해졌다. 어떻게 가야 하지? 이태리는 밤에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하던데.. 심지어 간혹 가다 총성이 들리기도 한다던데. 온갖 생각을 하던 중 대화를 나누었던 마술사가 선뜻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제의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집에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집 혹은 클럽으로 모두들 흩어지는 때가 오자 함께 왔던 대학 동생에게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해서 한국 여자 둘과 이태리 남자 둘이 차에 탑승했다. 이태리의 많은 차들처럼 작고 콤팩트한 자가용이었다. 동생의 집은 비교적 가까워 오분 내로 도착했고 우리 집은 십분 정도 더 가야 했다.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차에 타고 혼자 남겨진 후로 뒤늦은 걱정들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오는 도시에 학생도 아닌 모르는 신분은 이태리 남자 두 명의 차에, 심지어 맥주를 몇 잔 걸친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타 아무도 없는 집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머리에 떠올랐다. 손바닥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집 앞에 도착해 빨리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술사는 내리기 전 나를 붙잡았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이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둘은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마술사는 호감을 표현하며 또 보자고 했고 페이스북 아이디를 교환했다. 최대한 긴장한 기색을 감추고 ‘grazie mille’를 반복하며 드디어 차문을 열었다. 도로에 발이 닿으니 옥죄던 압박으로부터 심장이 풀려나는 기분이었다. 거리에는 마술사와 친구들의 차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이 캄캄했다. 부리나케 건물로 달려가 현관문을 열렸는데 현관 키를 바로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었다. 그동안 차는 떠나지 않았고 뒤통수에서 시동이 걸린 차 소리와 그 안의 시선이 느껴졌다. 겨우겨우 문을 열고 들어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건물은 조용했다. 헉헉거리며 4층(유럽식으로는 3층)에 다다랐고 잠기지 않은 문을 열었다.

시모네는 집에 없었다. 하루 전에 잠시 고향인 베니스로 다녀온다고 했던 것 같다. 텅 빈, 거대하게 느껴지는 빈 복도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텅 빈 집이 되려 무서웠다. 빠르게 씻고 돌아와 방문을 잠갔다. 담요를 끌어안고 이불 아래 몸을 묻었다. 드디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대략 두시였다. 그렇게 첫 모임, Traveling Bar가 끝났다.




다음날 아침, 어제 만난 미고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잘 들어갔냐며, 자신은 클럽에 잠시 있다가 피곤해서 일찍 집으로 향했다고 했다.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첫 친구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희망에 가득 차 연락을 주고받다 함께 두오모 옥상에 가기로 했다.



날은 무척이나 더웠고 햇살은 강렬했다. 두오모 외관을 보고 몇 번 지나치기는 했지만 두오모 옥상에 가본 적은 없었다. 광장에서 미고를 만나 근처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상 술을 마시지 않고 만나니 어색하기는 했다. 미고는 소년처럼 볼과 귀가 빨개진 채로 웃어 보였다.

두오모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두 가지였는데 미고가 후자의 티켓을 결제해둔 덕에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옥상은 노트르담과 달리 길이 넓고 더 거대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벽돌이 아닌 대리석이어서 때가 탄게 더 잘 보였다. 두오모 성당에서 바라본 이태리는 붉은빛의 지붕들로 가득해 파란 지붕들의 파리와는 또 다른 광경이었지만 파리와는 달리 뇌리에 박히거나 마음이 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볼 수 있는 조각들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두오모를 나와 근처 공원 ‘Parco Sempione’에서 산책을 했다. 공원은 한강 공원처럼 깨끗하지는 않았다. 더러운 것도 아니었지만, 뉴욕 센트럴 파크의 느낌에 가까웠다. 곳곳에서 대마 지린내가 진동했고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공원은 무척이나 넓었다. 서울숲보다도 훨씬 더 컸다. 여기저기 걸어가다 할 이야기가 동나고 점점 어색해졌다. 그러던 중 미고의 친구들, 교환학생 친구들과 마주쳤다. 지난날 트레블링 바에서 보았던 얼굴들이었다. 이미 다들 서로 친해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놀러 다니는구나.. 싶었다. 생각보다 미고와의 시간이 엄청나게 편하지는 않았다. 미고가 낯을 가리는 건지, 쑥스러웠던 건지. (나중에야 이 친구가 나를 좋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해서 미고와는 작별하고 두오모 옆에 위치한 애플스토어 (광장같이 분수도 있고 크다) 앞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다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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