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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고쳐야 하는 건가, 아니 고칠수는 있는건가

단점들은 다 고쳐야 하는 건가

by 새벽녘

"너는 이것만 고치면 참 좋을텐데"


나도 단점을 가능한 모두 고쳐야 한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노력으로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걸 방치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점을 하나 하나 파악하고, 하나 하나 다 고쳐나가고, 장점은 더 극대화시키고. 그런 이상적인 자기계발을 꿈꿨다.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의 단점들은 주변 사람들이 많이 지적해줬다. 선생님들, 가족들, 친구들, 친척들 등등… 그리고 책도, 유튜브도, 인터넷 글들도 내가 찔릴만한 문제들을 많이 언급했다. 그리고 이건 자존감이 이래서 이런거고, 이건 방어기제가 이래서 이런거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그래서 이건 이렇게 하면 되고, 저건 또 이렇게 하면 되고…


지적 앞에, 피드백 앞에, 나의 단점 앞에 겸허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나빠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척 성숙한 척했다. 속마음 또한 그렇게 컨트롤하려 했다. ‘단점을 고치면 나한테도, 남한테도 좋은거니까. 겸허히 수용하고 계속 고치려고 애쓰자.’ 솔직히 돌아보면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내 단점을 쿨하게 인정하고 고치려고 하면 그 사람이 날 좋게 봐주겠지? 사람들이 더는 날 그런 사람으로 안보겠지? 어쨌든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나는 계속 노력했다.


그런데 뭔가 아이러니했다.

자존감을 높이라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해결책들이 많았는데?

계속 이것도 저것도 잘못됐다고 되뇌이고 벗어나려 애쓸수록 자존감은 도리어 낮아지지 않나? 내가 느끼는게 잘못된건가? 근데 당연한거 아닌가?

노력을 해서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어도, 그 노력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와 억압을 요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스스로 효과를 느끼고 좋은 피드백들을 받으며, 스스로 더 할 수 있다고 다독이며 계속 노력했다.

문제는 잘 되지 않을 때였다. 어떤 점들은 내 이상대로 컨트롤 되지 않았다. 더 노력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힘을 주고 애를 쓸수록 꼬일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자책감이 엄청나게 몰려왔다. 뭐가 문제지, 왜 난 성숙한 감정을 못 느끼겠지. 성숙한 말이 안나오지, 왜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가 너무 어렵지, 왜 그렇게 안되는거지?

나는 결국 신체화 증상과 화병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단점을 못고치는게 나만 그런가 싶었다.

남보고 고치라고 말하는 사람도(나도 때론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많고, 뭘 고쳐야 된다고 말하는 콘텐츠도 넘쳐나는데,

단점 지적 앞에 방어적으로 나오면 발전할 수 없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그런 사람 싫다고 말하는 말들도 넘쳐나는데,

관찰해보면 다들 그냥 자기가 어쩌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것 같았다. 지적받고, 신경써봐도 도저히 어쩌기가 어려운. 포기하거나 외면하게 되는 자신의 어떤 점들.


단점 지적하는 것을 좋아하고, 발전을 위해서는 고쳐야한다고 강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 중에는 정작 본인은 별로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름 그렇게 하려고 엄청나게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모두 자신의 어떤 단점들은 방치했다. 모르는 건지, 그런 점들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들도 노력해보지만 좀처럼 고치기가 너무 어려운건지 모르겠으나, 그들도 잘 고치지 않는 점들이 많았다.


그냥 순전히 내 경우에만 한정해서 말하면, 단점 고치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사람이 뭔가 솔직하지 못해지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그런-뭔가-기분 나쁜 음침함이 나의 내면에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약한 점들에 관대하지 않으면서, 남의 약한 점들에는 관대하기란 실로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려 그래도 남들에게도 엄격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왜 저 사람은 저런거 안고치지, 자기는 모르는건가, 노력을 안하는건가. 별로 심각하지 않은 문제들에도, 사소하게 거슬리는 문제에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웃긴 것이 생각해보면, 그냥 자기 단점 내버려두고 사는 사람도 나름 개성있는 각자의 삶들을 꾸려간다는 것이다.

나름 내 기준에서 그래도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는 단점들도 있다(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타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굉장히 폭력적이라거나 무례한 것. 혹은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감을 거의 보이지 않는 것. 본인이 고치기 어렵더라도 그런 점들을 가지고 있으면 대게 사회적인 제재가 들어가서 어느정도 고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업무적인 것, 본인 분야에서 기술적인 것들. 이런 것들은 그리고 노력하면 꽤 많이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노력하면 메시처럼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배우려해야 하고, 학문에서도 지식과 타인의 견해를 배우려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부분에서까지 ‘이건 제 개성인데요’라고 하며 일을 망치면 안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단점이라는게 사실은 개성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요즘은 들었다. 보통 어떤 장점이 있어서 단점이 있고, 어떤 단점이 있어서 장점이 있는거니까. 그 양날의 검 자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인데, 다 예쁘고 매끈하게 조각하려는 것은 개성을 존중하는 것일까? 그게 과연 한 사람의 잠재력을 잘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일까?

불안형, 안정형, 회피형이 있으면 정말 다 안정형으로 예쁘게 조각해야 되는걸까? 모든 노래 가사가 안정형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세상이 그래도 더 아름다운 걸까?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을 잘 느끼는 것은 잘못된건가? 사람들이 다 그런 마음을 ‘성숙하게’ 잘 컨트롤하고, ‘나한테서’ 문제를 찾고, 잘 ‘극복’하면, 최은영 작가의 소설이나 한강 작가의 소설 같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을까? 극 F 성향이어도 일할 때 피드백 앞에서는 한없이 냉철하고, 극 T 성향이어도 친구의 고민 상담에 무한한 공감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어떤 ‘완성형의 인간’일까? 내향인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 잘하고 능청스러워야 좀 덜 부끄러운 사람이 되는걸까? 계획적이지만 융통성이 있어야 하고, 자존감은 높아도 자기 자랑은 너무 재수없게 하면 안되는건가? 초연하기만 하면 가식적이고, 솔직하기만 하면 애같으니까 두 개를 동시에 해야하나? 누군가가 보기에 마음에 안 들만한 점들은 전부 다 깎아서 없애버려야 하는걸까?

아니 일단 그게 좋고 말고를 떠나서, 그렇게 할 수 있나? 말이 되나?

설사 다 그렇게 성공시킨다고 해도, 사람들을 다 클론처럼 만드는 것 아닌가?

물론 사회화 과정에서 어느정도 자신의 단점을 다듬는 건 나한테도 남한테도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사회 생활에 크게 지장 없는, 남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까지 다듬어도, 누군가는 거슬리면 계속 지적한다. 또, 그 지적을 해서 자신의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도 지적한다.


야, 좀 자신감을 더 가져봐, 그렇게 우물쭈물해서 되겠냐.

야, 좀 그렇게 너무 나서고 나대고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해.

야, 뭐 그렇게 주변 사람들한테 오지랖 부리냐. 그거 자존감이 낮아서 생기는 인정욕구의 발현이야.

야, 좀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 내향적인 애들은 방어적인 자신을 꼭 포장하더라.

야, 좀 도전을 해봐. 그렇게 안전 지향적인 태도는 성장에 도움이 안돼.

야, 그렇게 무턱대고 다 하려 한다고 되냐? 하여간 너는 조심성이 없어. 넌 그게 문제야.

야, 넌 진중한 면이 없어. 사람들이 다 너 가볍게 봐.

야, 남들 말에 그렇게 신경 쓰니까 안되는거야.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좀 가져봐.

야, 너는 니 주관이 강해서 문제야. 평판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거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잖아.


그런 지적들을 들을 때면, 나름의 촘촘한 논리와 사례들을 들을 때면, 그리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같이 높일 때면, 그 분위기에 압도되고 만다.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사람은 절대 되서는 안될 것만 같을 때도 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그런 자신의 단점들을 안고가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례들을 보다 보면, 그렇게 심각하게 보였던 문제들이 어쩌면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은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사람도 끊임없이 스스로의 단점과 싸우고 고민할 수 있겠지만. 그게 본인 성찰 때문이든, 남들 말 때문이든 말이다.

어쨌든 저마다 고치려 시도해봐도 정말 고치기 어려운 점들이 있을텐데, ‘그게 꼭 고쳐야하는 건지’ 한 번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지적받기 싫어서, 남들 보기 예쁘고 매끈하게 깎여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애쓰면 어차피 또 누군가는 개성이 없다며 문제삼지 않겠는가. 이 또한 선택의 문제겠지만, 어떤 방향을 택하든 본인의 결정이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은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던 찰나에 이전에 봤던 유튜브 영상이 하나 생각나 다시 검색해 보게되었다. 마이크 임팩트라는 채널에 김이나 작사가가 나와서 젊은 청춘에게 짧은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이었다. 20대에 청년들 중에는 자신이 가진 개성과 장점을 주변 시선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숨기려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했다. 남들이 그만큼 지적 한다는 것은, 그게 남들보다 과잉되어있다는 것인데, 사실 그건 그 과잉된만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감수성이 굉장히 풍부한 어떤 남자 작사가가 살면서 ‘남자답다’, 멋있다’는 평가를 그다지 들으면서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쓴 가사는 여자보다 여자의 마음을 더 섬세하게 잘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신이 가진 그런 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감이 되는 영상이었다. 그리고는 좀 더 멋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자신의 감정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30대 이상부터 해도 괜찮다는 말을 했는데, 글쎄 그런 시기가 언제가 적당할지는 결국 본인이 정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지금 내가 가진 의문과 고민에는 도움이 많이 되는 말들이었다. 단점이라는게 완전히 방치해서도 안되고, 너무 고치려 집착해서도 안되고 줄타기를 해야하는 것이겠지만, 앞으로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모든 것을 뜯어고치려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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