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바보 같은 거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 간단 리뷰

by 새벽녘

나한테 인생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세 영화 중에 고민할 것 같다. <쇼생크 탈출>, <굿 윌 헌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이다. 그 중에서도 굳이 지금 시점에서 하나만 뽑으라면 <쇼생크 탈출>일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감명받은 영화는 리뷰를 쓰기 신중해져서 계속 미뤘다. 왠지 리뷰를 잘 써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루다가 그냥 일단 정말 간단하게 하고 싶은 말들만 써보자고 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이 영화가 왜 그렇게까지 내게 인상깊게 남았을까 생각을 해봤다. 다양한 관점에서 볼 때 잘 만든 영화들은 정말 많았다. 결국 이 영화가 내게 특별했던 이유는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기 때문이었다.


결심은 고통 앞에 무너진다. 긍정적 마음은 부정적 경험 앞에 무너진다. 희망은 좌절 앞에 무너진다. 한 두번으로는 잘 안 무너진다. 여러 번 반복되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무너지는 순간이 반복되면 이전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그러기 싫어도 그렇게 되기도 한다. 결심이나 희망 같은 것들이 바보 같은 것들로 느껴진다. 그냥 허울좋은 말. 듣기 좋은 말.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들. 유치하고 쓸모없는 관념들, 그냥 말장난들.


행복을 위해서든, 아니면 좋은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든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다, 사람들은.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이 보여야 하고, 희망이 있어야 하고, 야망이나 결심 같은 것들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쩌나. 앞서 말했듯이 이걸 아무것도 만들어버리게 만드는 방해물들이 세상에는 널리고 널렸는데. 무슨 지뢰를 밟듯이 재수 없으면 불행을 밟게 된다. 랜덤이다. 예방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냥 대책 없이 당하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희망은 헛된 것이라고 말하는 레드의 말은 섬뜩할 정도로 진실되게 다가온다. 현실적이라는 말이 염세적인 말과 일상에서 혼용되어 쓰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린 꽃길만 걷자는 말을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이유는 그걸 진실로 믿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그냥 축복의 마음이고 의도일 뿐이다. 꽃길처럼 보여도 안보이는 곳에 가시가 깔려있고 지뢰가 깔려있다. 앞서 말했듯 조심한다고 다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조심하면서 살면 그 자체가 일종의 형벌이나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자세한 과거의 사연은 안나오지만, 감옥에 들어와 인생이 꼬이고(본인의 업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연이은 가석방 심사에서 반복된 실패를 겪은 레드는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아, 희망은 개소리구나. 누구 말마따나 포기하지 않는다고 뭐가 되지 않는구나. 희망을 대하는 레드의 태도에는 일종의 혐오와 분노까지 서려있는 것 같다. 줬다 뺏는 것이 더 나쁘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반복된 배신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럼 거기까진 흔하게 체득되는 삶의 지혜인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높은 확률로 수시로 불행을 밟는게 삶이고, 희망은 헛된 것이니 그냥 잘못 밟으면 저항하듯이 늪에 빠져 질식하듯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굳이 그러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런 시기가 찾아오는 경우는 많은 것 같다. 그러길 원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냥 별 다른 대안이,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 보이는 걸 어떡하겠는가.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기억하세요, 레드. 희망은 좋은 겁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결국 쇼생크 탈출의 핵심 메시지는 앤디가 탈옥 후 레드에게 보낸 편지 안에 있다. 이 영화는 이 편지의 문장에 부합하게 정말 희망적으로 끝난다. 억울하게 징역을 가고, 온갖 몹쓸 짓을 당하고, 이용도 당하지만 결국 탈출해서 새 출발을 하는 앤디. 진실된 반성 끝에 가석방 심사를 통과하고 앤디와 함께 새 출발을 하게 되는 레드. 그 과정을 영화로 다 본 사람들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감동하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역시 꼬아서 볼려면 얼마든지 꼬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탈출 시도는 늘 성공하는가? 괴로운 상황, 억울한 상황, 고립된 상황에서, 희망을 가지고 계속 시도하면 ‘결국엔’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아니, 이건 영화를 그렇게 써서 그런거고. 혹은 세상의 그런 부분만 비춰서 그런거고. 아닌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는데, 희망은 결국 헛소리인게 맞지 않아?’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나는 요약의 힘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 몇 문장의 논리들로 이루어진 메시지와 조언들은,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충분히 마음에 와닿지 못한다. 나는 앤디와 레드가 탈출 이전까지 한 경험들, 즉, ‘과정들’을 보면 희망을 쉽게 음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앤디는 억울하게 징역살이를 하게 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그곳에서 마저 자신의 삶의 가치들을 창조했다.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앤디가 만약 감옥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희망을 포기했다면? 다른 죄수들이 그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교도관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버틸 수 있었을까?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노동 이후 같이 맥주를 마시는 멋진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는가?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교도소에서 음악이 흘러나와 많은 이들이 감동하는 장면은?


희망이 없었다면 이런 일들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탈출 승부수가 얼만큼 현실성이 있냐를 떠나, 그 성공 여부를 떠나(성공 여부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희망은 앤디를 그 곳에서도 ‘살게’ 만들었다. 알베르 카뮈의 말마따나, 정말 세상은 온갖 부조리로 가득하다. 그런 불합리한 세상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바보 같은 짓이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을 품어야 그래도 좀 살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생기 있게 만들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지난 번에 리뷰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는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 없기에,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낙관적 허무주의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창조하는 에너지가 결국 희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 없으면 결국 인간의 에너지는 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희망은 삶의 건전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한테 용기를 주고, 동기를 줬다. 어떻게 보면 나를 안심하게 해줬다. 나는 최악의 최악의 최악을 생각하기 싫어도 미리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한 긍정 같은 것읕 찬성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체질적으로 나와 맞지도 않는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긴다면 나는 이전처럼 속으로 소리지르고 울고 괴로워할 같다. 다만, 결국 시기에 따라 희미해지더라도, 부정적 감정이 안에 가득 차더라도, 실낱 같은 희망일지라도 그래도 희망은 품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최악의 상황의 연속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간 앤디처럼. 유명한 노래 제목들처럼 어쨌든 삶은 계속 흘러갈 수 밖에 없으니까. Life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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