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피곤하게 느끼는 것
소크라테스가 반박하는 말하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공감하는 말하기를 훨씬 더 좋아하는 성향이었다면 그런 철학을 주장했을까? 쇼펜하우어가 세속적 욕망과 성취를 강하게 추구하고, 회의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심플한 성격이었으면, “내려놓는 방식이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와 같은 말을 했을까? 칸트가 강박적인 성격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니체가 슈퍼 인싸 재질의 사람이었다면 그런 재질의 초인 사상을 설파했을까? 아들러가 파워 I(내향적) 성향에 혼자 연구하고 책 읽는 걸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성향이었으면 그렇게까지 공동체나 사랑을 강조했을까?
무심코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성격이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다’라는 말은 나에겐 정말 많은 것을 설명해줬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이래야 한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이렇기에 어떻게 가야한다’와 같은 전제가 수많은 가치관과 철학에 깔려있는 경우가 많았고, 난 그게 어느 시점부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탐구나 연구들도 당연히 열심히 했겠지만, 어쨌든 자기 성격은 세상의 어떤 정보를 해석하든 렌즈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당연히 그럴 것이고.
사실 예시로 든 거장들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피곤한 것은 요즘의 메시지들이었다. 정말 인간 보편의 특징을 설명하고, 정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시도가 굉장히 많지 않나 싶다. 사실 안다. 무작정 비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인류사가 정반합을 통해 발전하는 거고, 이런 저런 다양한 주장들이 서로 영향을 받으며 더 나은 논의를 끌어낸다. 누군가에겐 그런 메시지들이 인생의 큰 도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실은 나 또한 그랬다. 양비론, 양시론, 중립을 기계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성격, 자신이 낀 렌즈를 기반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토론하는 것이 건강할 때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은 무작정 비판하려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야기를 하는 태도가 닫혀 있으면(‘그냥 이게 인류 보편에게 맞음ㅇㅇ. 아니라고 생각하면 니가 뭘 모르는거임’같은 태도) 확 피로해진다. 솔직히 그런 메시지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강하게 사고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누군가의 개성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근데 솔직히 피로감을 많이 느끼기는 한다.
이걸 최근에 가장 대표적으로 느낀 케이스가 ‘손절’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메시지들이었다. 이 키워드가 유행이 된지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스테디셀러가 된 것인지 좀처럼 그 온도가 식지 않는 느낌이다. 하긴 원래 인류에게 스테디셀러인 주제였을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는 인간에게 영원한 숙제니까. ‘손절’이라는 표현이 유행한게 몇 년 전이었던 것이지.
손절에 대해 호의적인 콘텐츠, 메시지와 또 반대로 손절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콘텐츠, 메시지들은 둘 다 굉장히 강경한 경우를 많이 봤다. 양쪽 주장을 하는 자체는 각자 건강한 논의를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과, 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해소의 창구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근데 주장이 강경할수록 의문이 생긴다. 약간 뉘앙스가 ‘성숙한 인간이라면 내가 하는 방식을 지지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성숙한 사람이다’라고까지 느껴지는 것들도 본 것 같다. 근데 글쎄, 정말 그럴까?
손절을 예시로 들었으니 말해보자면 이제는 이게 법칙화할 수 있는 문제인지 의심스럽다. 나는 처음엔 손절이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가, 또 나중에는 바뀌었었다. 그건 너무 배려없고 책임감 없는 태도이고 성장과 화해를 막는 미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 차례 왔다 갔다 했다. 근데 그게 내 여러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졌었다. 어떤 인간 관계를 끊고 말고는 본인 성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또 본인이 어떤 성장기로에 서서 앞으로는 어떤 방향을 추구하고 싶은지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는 문제가 아닐까? 손쉽게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이 주제에서는 진짜 맥락이 미치는 영향이 엄청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특정 선택을 하는 사람을 ‘겁나게 미성숙한 사람’ 혹은 ‘뭘 좀 모르는 사람’이라고 치부해도 되는걸까?
애당초 그렇게 이상적인 선택이라는게 있을까. 보통 상대를 어느정도는 배려하는 선에서(각자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더 좋아하는 방식으로 가는 어느정도 이기적인 선택들을 하는 거겠지. ‘나는 정말 타인과 나를 너무나 퍼펙트하게, 또 균형있게 함께 위하는 완벽한 선택을 했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애초에 확인할 수도 없지 않을까? 상대의 마음은 아무리 친하고 가까워도 완전히 알 수 없는 영역인 것을.
내가 가치관에 성격이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말을 떠올렸던 것도, 거장들의 사상과 성격의 관련성에 의문을 품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성격과 인간관계를 대하는 방식, 관계에서의 민감성 등에 따라 갈등을 다루는 것에 있어 내심 더 끌리는 방식도 다를 것이고, 자주 쓰게 되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이게 아까 예시로 든 손절이라는 주제에서 어느 입장을 선호하냐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다들 머릿 속의 이성과 논리만으로 결론을 도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절대적인 논리로 정답을 도출한 영역이 아닌데, 그런 것처럼 말을 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근데 그걸 고려안하고 다른 입장을 쉽게 단죄해도 될까? 손절을 싫어하고 손절을 하기 보다는 당한 경험이 많은 사람을, 쉽게 불안형이라고 단정짓는다거나, 둔감해서 무례한 스타일일 것이라고 단정지어도 되나? 아니 불안형이고 둔감할 수는 있는데 그러면 또 ‘불안형은 어쩌구…’라고 한마디씩 하면서 나이브하게 치료하려 들 것 인가? 반대로 손절이라는 도구를 활용하고 당하기 보다는 할 때가 많은 사람들을 회피형이고 예민하다고 하면서, ‘회피형은 왜 그러는 거고 문제가 뭐고…’하면서 이들도 고쳐주려 할 것인가? 강경하고 나이브한 많은 훈수들을 보며 이렇게 우리 사회에 이런 말들을 할 자격이 있는 안정형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냥 내가 어떤 유형 때문에 상처받고 화났다고, 그래서 마음에 안든다고 말하는게 더 솔직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말한다고 하면 그냥 이해도 확 되고 공감도 확 되면서 피로도가 쭉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자기와 다른 스타일 때문에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근데 그게 인간 관계 방식에서 어떤 단일한 정답 패턴을 만들 근거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내가 왜 이런 강경한 메시지들이 누적되니까 피곤한가 생각해봤더니, 내가 무슨 선택을 하던지 누군가는 태클을 걸 것이라는 생각이 연결된 것 같았다. 사실 근데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은 맞다. 근데 내가 직접적으로 태클이 걸리지도 않는 상황인데도, 강경한 메시지들을 볼 때면, 그것도 같은 주제에 대해 양측의 의견이 다 강경한 것을 볼 때면,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나를 한심하게 보거나 경멸하겠구나’싶은 마음이 무의식에서 들었던 것 같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이럴 때 직관적으로 실감한다. 무의식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 불쾌하고 무섭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나를 향해 태클을 걸거나 혐오하는 것이 인간 사회를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잘 소화하고 대처해나가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혼자 그냥 생각하고 소화하지, 왜 이런 글을 썼나 약간 현타가 오기도 한다. 또, 그냥 각자 사람들이 감정도 해소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건데 좀 너무 비판적으로 썼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번쯤은 이런 감정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긴 했었다. 진짜 문제는 타인의 발언들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가치관에 대한 발언이야 각자의 자유인 것이고, 그게 사실 얼마나 강경하든 아니든 논의가 중요한 것이기도 하니까. 강경하다고 느끼는 것도 내 주관이긴 하니까, 사실 비판한 내용에 대해서 매우 자신 있지는 못하다. 그냥 내가 어느 길로 가든, 누군가에겐 강하게 배척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문제인 것 같긴하다. ‘그런 건 살아가면서 잘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성숙한 척, 괜찮은 척 말해도, 때때로는 솔직히 그게 별로 괜찮지 않게 느껴지는, 인간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유약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정리되지 않은 내 감정이 핵심 아닐까. 흔들리지 않아보려 힘을 꽉 줘도, 무의식에 누적된 여진은 계속 무시하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