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노트를 미리 할 수는 없어

인생은 백점도 따로 없기에

by 새벽녘

정보가 너무 많다. 처음엔 좋았는데 요즘엔 오히려 문제처럼 느껴진다. 어느 시점부터 정보를 미리 아는 것이 불안을 달래주지 못한다. 지켜야하는 강박이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 중에 '인생은 매순간이 실전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공감이 된다. 그래서 실전에서 오답노트를 하고 싶지 않았다. 시험공부를 할 때 오답노트는 공부할 때 하는거지 시험날 하지 않는다. 대입으로 치면 모의고사까지도 오답노트가 될 수 있다. 근데 수능은 오답노트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후회를 싫어한다.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가 싫다.


근데 인생은 매순간이 실전이라서 오답노트를 미리 할 수가 없다. 미리 연습하고 점검해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틀리기가 싫은 나같은 사람은 미리 생각을 많이 한다. 정보를 많이 알면 좀 안심이 된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처럼 나는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근데 사실 시험공부 할때만 생각해도, 개념과 원리를 열심히 공부하고 문제를 푼다고 해도 틀리기 마련이다. 근데 시험보다 맞다 틀리다가 애매한 삶은 어떤가. 맞는 길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헷갈려서 오답노트를 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요즘처럼 sns나 유튜브, 책 등에서 정보를 너무나 많이 접하게 되는 시대라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실전 이전부터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는 이래서 문제고 대충 사는 건 저래서 문제다. 맺고 끊을 줄 모르는 사람은 이래서 문제지만, 방어적인 사람은 저래서 문제다. 미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엉망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되면 안되는 이것 저것을 다 피하다보면 내가 서 있을 공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요즘엔 심리학 용어들, 진단명들이 다 대중화되고, 삶의 이런저런 철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책, 강연, SNS를 통해 퍼져나가다 보니, 내 머릿 속에는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다. 미리 대비하고 조심하려는건 기본적으로는 좋은 성향일터다. 근데 이 정보과잉과 합쳐지니, 그냥 내 스타일대로 시도해보고 오답노트를 작성하며 배우는 올드스쿨의 가치를 내가 잃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말이 올드스쿨이지, 사실 삶에서 무언가를 노력하고 배우려면 결국 가장 핵심적으로 거쳐야하는 정수고 본질이 아닐까한다. 물론 수많은 정보들은 경험과 뇌피셜로 인한 편향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결국 인생은 체험인데 정보는 경험은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삶은 매순간이 실전이라서 틀리고나서 오답노트를 하면 너무 아프지만, 또 매순간이 실전이라 그 배운걸 써먹을 다음 기회가 계속해서 오기도 한다. 그래서 틀리는게 무서운 나같은 사람도 좀 정보과잉에서 물러나고 내 판단을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사람이 되야하고, 저런 사람은 되면 안된다는 말이 많기 때문에, 때로는 나는 이 삶이 꼭 정말 점수가 있는 시험지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 기준들이 이렇게 너무 많다는 것이 무얼 의미할까? 지금까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느껴왔던 건 같다.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피해야하는 것이 너무 많기에, 성숙이라는게 마치 애쓰고 피해야 할 지뢰가 너무 많아 발디딜곳 없이 좁은 곳에 이악물고 버텨서 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그냥 시험지처럼 누가 객관적으로 채점해줄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닌 것이다. 하물며 전문가,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논쟁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데 나라고 어떨까. 사람들은 다 사실 누가보기에 오답인 것들을 필연적으로 밟고 서있다. 내가 보기에도 이번에 밟은게 오답같다면 오답노트를 다음 실전을 위해서 하는 심플함이 내 삶을 보다 숨쉬게 해주길 바란다. 이 수많은 지식과 판단 기준들의 홍수에도, 내 인생의 오답노트를 미리 할 수는 없기에. 그리고 내 인생을 채점해줄 백점짜리 인생도 어디에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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