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가 커서 엄마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을 꿈꾼다. 반대로 아이가 엄마 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땐 빈 둥지 증후군(자녀가 성장해서 독립했을 때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을 겪기도 한다.
둘 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흔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대부분이라는 뜻이지 전부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니콜 엄마는 둘 중 어느 경우도 속하지 않았다. 아이가 열아홉 살인데 아이와 20분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엄마다.
애가 열 아홉살인데 20분 이상 떨어지지 못하는....
누가 아니랬니...
물론 니콜이 좀 특이한 경우다. 그 나이까지 발목에 소변 주머니를 차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통증이 아니었으면 새로운 병원도 찾지 않았을 텐데 전에 없던 통증이 생기는 바람에 시애틀 병원 신경외과 의사 데릭을 찾아왔다.
니콜은 걸을 수 있는데도 소변 주머니 때문에 휠체어를 탔다. 휠체어를 탔다고 홈스쿨을 했다. 모두 그녀 엄마의 결정이었다.
데릭은 방광 성형술을 제안하면서 니콜에게 직접 말한다. 수술하면 또래처럼 살 수 있다고.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할 거라고.
니콜은 대답 없이 큰 눈만 또르르 굴렸다. 니콜 엄마의 안색은 흙빛이 됐다.
아이가 어릴 때 아주 잠깐, 홈스쿨을 생각한 적이 있다. 사춘기 소녀 마음보다 더 쉽게 널뛰는 교육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시 대기처럼 보이는 학교폭력을 걱정했다. 대안학교를 알아보니 금액이 만만치 않았다. 쳇, 되게 비싸네. 내가 하고 말지. 홈스쿨러!!
아이가 걷고, 뛰고, 말을 하고 유치원을 가면서 널뛰는 건 교육정책이 아니라 내 마음이란 걸 알았다. 나는 홈스쿨을 할 능력이 없다. 학령기 전에 내 분수를 깨달은 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홈스쿨을 했으면 내가 죽든 애가 죽든, 사달이 났을 거다.
니콜의 엄마는 아니었다. 니콜이 아프다는 이유로 희생을 선택한다. 희생을 선택한 이상, 모든 수술은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위험 0퍼센트인 수술은 없으니까.
그녀의 모성애는 토마토 줄기처럼 쭉쭉 뻗어갔다. 뻗긴 하는데 가지치기가 없어서 키만 크고 열매는 없다. 처음 만난 데릭도 그걸 알아채는데 니콜 엄마만 모른다.
니콜의 엄마는 똥 씹은 표정이다. 수술은 안한다고, 통증이나 해결하라며 데릭의 말을 자른다. 데릭은 레지던트 알렉스를 시켜 니콜과 부모를 떨어뜨려 놓는다. 부모에게는 검사가 꽤 오래 걸린다며 둘러댄다.
니콜은 알렉스와 종일 같이 다닌다. 우연히 알렉스의 연애사를 들은 니콜이 말했다.
“아저씨는 바보예요. 아까 들었어요.
왜 이지에게 키스하지 않았나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키스할 기회가 생긴다면
머뭇거리지 않을 거예요”
니콜의 당돌함에 알렉스는 그의 성격대로ㅡ원래 남을 배려하는 캐릭터가 아니다ㅡ 대답한다.
“발목에 달린 소변 주머니를
제거할 기회가 생긴다면
나도 머뭇거리지 않을 거다.
또 엄마가 대신 말을 하게
놔두지도 않을 거야”
눈길도 안 주고 말함. 현실에선 이런 남자 싫은데 화면에서 보면 넋놓는 1인...뜻밖의 공격에 니콜은 토라지지만 관객은 그녀의 눈빛으로 들을 수 있다. 19년 동안 갇혀있던 생각에 금이 가는 소리를.
내 아이는 다행히 공교육 시스템에 들어갔다. 학교라는 파도를 적당히 타 넘으며 자기의 방식을 깨치는 중이다. 그 모습이 눈부셔서 더 눈부시라고 최소한의 간섭만 했다. 아이는 간섭하지 않는 내게 서운해하기도 했다.
“엄마는 왜 나 데리러 안 와?”
“데리러 가기에는 너무 가깝잖아”
“다른 애들은 오잖아”
“우리 딸은 똑똑해서
굳이 엄마가 안 그래도 되잖아?”
내 칭찬에 종종 아이의 광대뼈가 올라갔다.
오지 않는 엄마에 가끔 아이의 어깨가 내려갔다.
아이는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부지런히 크고 있었다. 어느 날은 놀이터에서만 일곱 시간을 채웠다. 숙제를 놓고 갔다가 엄마가 안 갖다주겠거니 미리 알고 숨 넘어가게 집으로 뛰어왔다.
숙제를 챙겨서 다시 뛰어나가는 아이에게 “우와, 그새 달리기가 늘었네. 멋지다!” 라고 호들갑 떨었다. 그 와중에도 주머니 속 차키는 나를 주차장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차키와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아이는 벌써 저만치 뛰어갔다. 달리기가 늘었다는 말이 정말 아이의 등을 밀어주나 싶었다.
놀이터에서 일곱 시간을 뛰다온 아이의 정수리에서 쇠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뭐한다고 이렇게까지 놀았냐. 숙제할 생각이 있기는 하냐 소리를 샤워기에 대고 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주고 나왔다.
다음날 아침에 학교 가기 직전까지 숙제를 했다. 나머지는 학교 가서 더 했다나. 그러다가 선생님한테 한소리 들었다나. 놀이터에서 여섯 시간만 놀면 숙제 할 시간이 있을 것 같다고 지나가는 소리로 툭 던졌다. 물론 아이에게 닿지는 않았다. 이게 정말 가지치기가 맞나 싶은 날이었다.
하루 종일 알렉스와 같이 지낸 ㅡ 난생처음 부모와 몇 시간 떨어져 있어 본 ㅡ 니콜이 부모에게 말한다.
두 분은 말하고 또 말하지만
제겐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아세요?
제 잘못도 있겠죠.
수수방관했으니까요.
더 이상 잠자코 앉아서
제 제어권을
넘겨주지 않겠어요.
이제 스스로 할 수 있으니까요.
수술받을 거예요!!
니콜의 엄마는 아이 낳고 20년쯤 흘러 아이가 안 보이는 생활에 적응해야 했겠다. 나는 아이 낳고 10년쯤 흘러 아이가 안 보이는 생활에 적응 중이다.
내가 니콜 엄마보다 조금 어리니 조금 빨리 적응하지 않을까.
아이가 안 보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그 시간에서만 자랄 수 있는, 바람직한 순간들이 쌓일 거라고 내게 세뇌 중이다. 나의 세뇌가 아이에게 닿기를 원하지만 말은 못 한다. 입안 가득 솜 뭉텅이를 물고 있는 기분이다. 니콜 엄마도 진심으로 적응할 각오면 내 두 배쯤의 솜 뭉텅이를 물고 있겠지.
니 제어권을 뺏지 않았으니 너도 어느 정도는 보고를 하는 게 도리이지 않겠느냐!!라고.
말하지 못하고 쓴다.
겉으로 쿨한 척하면서 속으로 오만 상상을 다 하는. 그러니까 지행합일과 매우 반대의 일상을 산다. 겉과 속이 달라 음흉하지만 토마토 줄기를 튼튼히 키우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적당한 가지치기로 키는 좀 작아도 튼튼한 줄기로 자랄 수 있게. 나의 모성애가 작아도 딴딴하길 바란다. 그 딴딴함으로 니콜 엄마처럼 뒤늦게 충격 받을 일이 없기를, 아니 덜.하.기.를. 바란다.
알렉스, 당신은 빅픽쳐를 그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