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나의 큰 아이와 지인 A의 외동딸이 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녀와 나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면서 단 둘이 카페에서 만났다. 나는 돌이 막 지난 둘째를 아기띠에 매고 (둘째는 15개월에 걸었다) 패딩 잠바를 걸치고, 아기띠 워머를 하고 나갔다. 그녀는 아이보리 반코트를 입고 가뿐한 홀몸으로 나왔다.
오는 봄이 달갑지 않은 3월 초는 최선을 다해 찬바람을 일으켰다. 그 기세에 놀란 나는 아기띠도 잊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마시려고 보니 애가 턱 밑에서 팔다리를 펄럭거리고 있다. 잘못 마시다간 애한테 쏟을까 싶어 커피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 사이에 A는 그녀의 딸이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까탈스러운지, 독박 육아가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지 등을 토로하며 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조명을 받은 긴 머리는 그녀의 손끝을 따라 엔젤링을 만들었다. 한바탕 쏟아내고 커피를 홀짝 거릴 때는 마스카라 한 긴 속눈썹이 매혹적이었다.
마스카라까지는 아니더라도 머리는 좀 감고 나올걸. 나는 왜 머리도 안 감은 채 질끈 묶고 야구 모자를 썼는가.
A가 너무 힘들어해서 그녀의 남편은 옆 동 장모님 집으로 퇴근한다고 했다. 남편이 지하철역 즈음이라고 하면 A와 그녀의 딸도 친정엄마 집으로 간다고. 그럼 엄마가 밥을 해놓고 기다린다고 했다. 엄마가 우리 덕에 적적하지 않을 거라 했다. 주중의 저녁을 다 친정엄마가 책임지니 주말 한 끼 정도는 외식을 하는데 엄마 입맛이 까다로워서 식당 고르는 것도 은근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녀의 고충을 늘어놓는 동안 아기띠에 묶인 아이는 일어나라, 걸어라, 나가라 등등의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났다. 답답해서 그런가 싶어서 잠시 풀어 의자에 앉혔는데 거기서 기어 다닐 태세다. 얼른 다시 안았다. 테이블 옆에서 서성거리며 A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창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할 때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다음에 보자며 도망치듯 나왔다.
단 음식이 미친 듯이 땡겼다. 다른 커피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휘핑크림 가득 올린 아이스 카페모카 그란데를 시켰다. 허겁지겁 원샷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도 있네.
원샷하고 10분도 안지나 휘핑크림의 되새김질이 시작됐다. 들숨날숨에 맞춰 크림이 혀끝을 한번씩 건드렸다. 뱃속은 딱 휘핑크림의 두께만큼 꼼꼼히 코팅됐다. 김치가 필요해!!
집에 오자마자 김장김치 한 포기를 꺼내 대가리만 툭 잘라내고 손으로 쭉 찢었다. 일단 김치를 입 속에 넣고 밥을 퍼 담았다. 15분 동안 두 그릇을 먹었다. 크림 되새김질이 가라앉았다.
문제는 그날 오후였다. 한 시간 간격의 물 설사가 시작됐다. 내가 자꾸 화장실에 가니까 아이는 타요 버스를 종류별로 화장실 앞에 늘어놨다. 별로 반갑지 않은 ‘쫘와악 촤르륵 주르르윽’ 소릴 반주삼아 화장실 문을 연 채 ‘타요타요 타요타요 개애~구쟁이 꼬마버스’ 노래를 불러재꼈다. 아이는 박수를 치며, 버스를 흔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부르면서 생각했다. A에게 ’당신이 독박육아면 나는 죽으라는 소리지’라고 쏘아붙이지 못한 화가 내 안에 쌓여서 설사를 일으키는 거라고. 말을 못했으면 못한 거지 그걸 고이 짊어지고 와서 내 몸에 풀어버리는 나도 참 지랄 맞다고. 여하튼 A는 다시는 만나지 않겠노라고.
2018년 3월.
아기띠의 아이는 6살이 되고 큰 아이는 2학년이 됐다. 두 아이가 모두 나간 어느 날. 나도 반코트를 입고, 아침에 감은 머리를 곱게 빗고 B를 만났다. B도 나와 비슷하게 아이를 키웠던 엄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조각 케이크를 두고 마주 앉았다. B가 말했다.
“참, 그거 알아? A가 항우울제 약 먹는대. 전화랑 톡으로 맨날 육아 우울증 하소연한다더라”
“그랬어? 둘째 낳았나 보네?”
“아니. 애 하나잖아”
“응? 두 살도 아니고 2학년 한 명 키우면서 무슨 육아 우울증이야?”
“친정엄마가 어디 아프셔서 A네 식사고 살림이고 이제 하나도 못 도와주나 봐”
유난을 떨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커피로 황급히 막았다. 대신 "특이하네.."라고 대꾸했다. 더 이상의 말을 하면 뭔가 실수를 할 거 같아서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아니, 여기 케이크가 이렇게 맛있었나? 케이크가 내 마음을 읽었나? 혼자 그러고 있는데 B가 말한다.
“오늘 여기 케이크가 유난히 맛있네”
포크에 묻은 치즈크림을 쪽쪽 빨아먹다가 B의 말에 사래가 들렸다. 켁켁 거리는 내게 B는 케이크 처음 먹어보냐며 촌스럽다고 놀렸다. 서로 낄낄댔다. 우리의 낄낄거림은 순전히 케이크 때문이라고 믿었다.
2020년 3월.
아기띠 안의 아이는 더 커서 1학년이 됐다. 학교는 못 갔다. 2020년의 3월은 전업주부 엄마들에게 돌밥(돌아서면 밥) 미션을 줬다. 어느 날은 돌밥 라이프에 짜증이 치솟았고, 어느날은 다리 붙들고 밑에서 우는 아이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싶은 맘으로 치솟는 짜증을 토닥여 재웠다.
토닥이다 말고 갑자기 A 생각이 났다. A는 토닥일 기준이 없겠구나. 그럼 이 돌밥 라이프가 더 고될 텐데. 우울증 약은 지금도 먹고 있을까. 나는 애가 둘이라 이제 가끔 자기들끼리 놀지만 딸 하나면 계속 엄마를 놀이상대로 찾는다는데. 더 힘들겠다. 어쩌냐... 싶은 맘이 들었다.
돌연 B랑 낄낄거리던 치즈케이크가 생각났다. 둘 다 말하지 않았지만 ‘쌤통이다’가 기저에 깔려있었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온가족이 24시간 뒤엉켜 있는 2020년의 3월, 그야말로 집밖은 위험해! 의 날들이었지만 어떤 날은 집이 더 위험해! 였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를 말이 튀어나와 집이 위험해 질 거 같은 날엔 무조건 나와 하천길을 따라 걸었다. 걷다보면 튀어나오려던 말들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져 스며들었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그러면 조금은 가뿐해졌는데 A가 생각난 그날은 걸을 수록 더 생생해지는 기억이 버거웠다. 그 당시 나의 이해는 얼마나 얕았던가. 얕아서 얼마나 무례했던가. 를 되새김질했다.
'나보다 애 쉽게 키우는 사람은 불평하면 안돼!' 의 독선이 내 안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촘촘히 있어서 다른 판단은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나보다 쉽다'의 기준은 무엇인가. 애초부터 가당치 않은 기준을 두고 제멋대로 사람을 재단하는 짓거리는 오만이다. 나보다 쉬워보이는 그들의 모든 속사정을 내가 알 수 없는데 말이다.
소위 말하는 '독박육아'를 하면서 징징거리지 않았다는 건 내게 일종의 훈장이었다. 누가 인정해주진 않아도 스스로가 만든 자긍심이었다. 위험한 자긍심이다. 자긍심의 한쪽 날은 뱀처럼 견고한 똬리를 튼 오만함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무례했던 날의 되새김질은 일부러 더 곰씹었다.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 자긍심이 마냥 좋은거라고 어깨에 힘주지 않기 위해. 곰씹을 수록 실시간으로 얼굴이 익어가는게 느껴졌다. 마스크를 통과한 찬바람도 맥을 못출 만큼 뜨끈했다. 뜨끈해지는 얼굴이 묘한 안도감을 줬다. 4번째 3월까지 가지 않고 알아챘구나. 나이를 아주 공으로 먹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다.
돌아오는 3월마다 세번째 3월을 기억하려 한다. 3월마다 한뼘씩 나아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