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렌카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착하고 상냥한 여자다. 그녀의 눈길은 잔잔하고 부드러웠으며 신체는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떠오르는 티 없이 상냥한 미소 같은 것을 보는 사내들은 저도 모르게 빙긋이 미소를 짓는 것이었고, 여자 손님들도 얘기를 주고받다가 “아이 참 귀엽기도 하지!” 하며 느닷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 보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었다. -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 중
올렌카는 겉모습도 예쁘고 공감능력도 뛰어나다. 올렌카의 건넛방에 사는 쿠킨의 넋두리를 듣다가 가슴 아프다고 눈물을 흘릴 정도다.(슬픈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쿠킨의 불평이었는데!)
올렌카의 공감은 애정으로 발전하고 둘은 결혼한다. 결혼 후의 올렌카는 철저하게 남편의 의견만 따른다. 자기 생각 없이 남편만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올렌카에게 쿠킨은 ‘귀여운 여인’이라 부른다.
생각 없이 말을 따라 하는 게 귀엽다고? 이건 세 돌도 안 된 아기 수준인데?
아이는 태어나서 3년 동안 평생의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다. 태어나서 그때까지가 가장 예쁜 시기라서 부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부모랑 싸울 일도 없고(물론 싸우긴 한다. 하지만 사춘기, 성인이 되어 싸우는 내용에 비하면 정말 애교수준이니) 아이의 행동은 ‘귀여워 죽겠는’ 경우가 많다.
어느 때 귀여울까. 어른의 말과 행동을 따라할 때다. 어른 말을 따라한다고 했는데 발음이 어설퍼서 귀엽고 완벽하게 따라하면 완벽해서 귀엽다.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가 할아버지랑 똑같이 뒷짐 지고 걸어가면 귀엽고 ‘에콘 틀면 탕문 다야 되어‘라고 하면 어설퍼서 귀엽다.
귀여웠던 아이들은 자기 목소리가 생기면서 안 귀여워진다. <엄마학교>의 서형숙 작가는 아이가 말대꾸를 할 때 괘씸하게 보지 말고 “내 아이가 이치를 따질 만큼 컸구나. 대견하다”라고 여기면 싸울 일이 없다고 했다.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내 아이가 어릴 때라 “오우, 현명해!” 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현명함은 어디로 갔는지.
올렌카는 쿠친이 죽은 후 3개월 만에 부스도발로프와 결혼했다. 극장 매니저였던 쿠친과 살 때는 연극의 중요성에 대해 쿠친과 똑같이 말했던 그녀가 여가생활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부스도발로프와 결혼한 후로는 단 한 번도 극장에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극장 나들이는 인생낭비라고 한다.
부스도발로프 역시 올렌카에게 “귀여운 나의 여인”이라고 한다. 남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그것도 고민없이 진심으로!) 올렌카에게 늘 귀엽다고 했다.
극장 티켓팅도 열심히 돕는 올렌카
쿠친에 이어 부스도발로프도 똑같이 말하는 부분을 보고 ‘나도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여야 귀엽다고 하는 걸까.’ 싶은 생각에 갑자기 뒤통수가 얼얼하다.
학교를 못가고 매일 집에 있는 아이들이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문제집을 샀다.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다음날도 귀여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이걸 왜 해야 해” 하면서 늘어졌다.
서형숙 작가 말대로라면 “왜?”라는 질문이 생긴 아이들을 기특히 봐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고른 문제집을 보고 감히 너네가 그런 말을 해?’ 라는 마음이 먼저 든다. 한바탕 잡을 뻔 했는데 올렌카가 날 붙든다.
그녀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불행은 이미 아무 일에도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데 있었다. 물론 자기 주위의 사물이 눈에 띄었고,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그런 일에 대하여는 아무런 자신의 의견도 세울 수 없었을 뿐더러,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 중
그날 밤, 아이들의 “왜?”를 좀 더 진지하게 듣기 위해서 한참을 얘기했다. 4학년의 “왜”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엄마가 선행학습은 안 시킨다고 했잖아. 오늘 시킨 문제집이 선행이야”
“선행 아니고 네가 온라인 수업을 제대로 안 들어서 그래. 원래 지난주까지 다 끝났어야 하는 범위인데 네가 안한 거지”
(온라인 학습 진도표를 보더니)“어, 그러네”
“선행은 안 시키겠다고 했지만 현행은 해야 돼. 이건 담임 선생님도 하랬잖아”
“내가 또 속상한 건 핸드폰 게임 시간에 닌텐도 게임을 한건데, 블라블라”
중간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들었다. 아이가 스스로 시험하는 한계를 응원해주고 싶었으니까.
성장 과정에서 넘을 수밖에 없는 선, 그 선을 넘으면 사고를 치고 혼난다. 혼나면서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구나′ 를 배운다. 그러다 자신감이 커지면 선을 과감히 넘어보기도 한다. 선에서 멈추고, 선을 넘어보고 하는 시도들이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과정이겠다.
4학년 큰 아이는 때로 화를 내면서, 때로 울면서, 때로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대답했다. 너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이 과정을 해내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아직 보드라운 젖살이 남은 볼을 내 볼에 부비며 팔다리를 휘감아 안겼다. 벌써 내 어깨까지 올만큼 쑥 컸지만 안긴 채로 “하아~ 기분 좋아” 라고 말한다.
아이의 기분 좋은 한숨이 마법 양탄자가 되어 한 몸으로 엉긴 우리를 둥실 띄워준다. 1시간이나 이어진 논쟁이었지만 이 시간이 초콜릿처럼 달콤했다. 엄마학교의 서형숙 작가의 글이 이런 뜻일지도 모른다.
알라딘과 자스민의 마법 양탄자
아이들은 앞으로도 종종 귀엽지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종종 귀여운 아이를 찾을 것이다. 내가 귀여운 아이를 찾을 때마다 아이의 기분 좋은 한숨으로 만들었던 마법 양탄자가 정말 마법처럼 나타나서 말해줬으면 좋겠다.
“귀여운 아이는,
귀여운 여인은 귀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