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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r 30. 2021

차원이 다른 찌끄레기에 대해

햇빛 vs 하우스

거의 매일 글을 쓴다. 매일 완성되진 않는다. 생각의 편린을 찌끄레기처럼 갈겨두고 나중에 손본다. 초고 쌓는 속도만 보면 프로초고러 급이다. 일간음감 할 때는 이 간격이 짧아서 허덕이다가 내가 찌끄레기로 추락하기도 했다.

글을 매일 쓰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같은 일은 당연히 안 일어난다. 쿠션 하나 끼고 유튜브나 넷플 보고 있으면 이보다 확실한 적성이 없다. 밤새도 거뜬하다. 글 쓰다 밤새워 본 적은 당연히 없다.

문제는 쓰기를 멈추고 보기만 쌓으면 어느 순간 내가 찌끄레기가 되는 기분이라는 거다. 일간음감의 마감을 맞출 때도 찌끄레기 같았지만 이 찌끄레기와 그 찌끄레기는 아주 다르다. 쓰다가 된 찌그레기가 그냥 시들시들 마른 나물이라면 보다가 쌓인 찌끄레기는 곤죽이 된  나물이랄까.

텃밭에서 자란 채소가 냉장고에 방치되면 그저 말라버린다. 마트 채소가 방치되면 물이 뚝뚝 흐르며 냄새가 난다. 같은 찌끄레기라도 천연 햇빛을 맞고 컸는지, 하우스에서 컸는지 마지막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쓰기는 분명 내 존재의 의미씩이나 일깨워주진 않는다. 대신 생산자 방향으로 조금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준다. 이 가능성은 내게 햇빛 같은 존재라 찌끄레기가 될지언정 썩은 물을 흘리는 곤죽이 되는 건 막아준다.

같은 찌끄레기라도 그저 말라버려서 가볍게 툭 버리는, 그런 찌끄레기가 되어보려 한다. 악취나는 물을 뚝뚝 떨구는 찌끄레기는 버리는 것도 부담스럽다.

오늘도 햇빛 품은 찌끄레기가 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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