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후한 말기, 십상시는 궁을, 황건족은 백성을 농락한다. 난세에 영웅 난다고 이러저러 영웅들이 저러이러하게 십상시와 황건족을 정리한다.
십상시와 황건족을 처리했더니 이번엔 동탁이 난리다. 독자는 여기서 배운다. 문제없는 삶이 없다는 것. 저 인간만 없으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저 인간 없애면 '다른 저 인간'이 온다. <저 인간 보존의 법칙>이다. 늘 존재하니 그를 다룰 능력도 필요하다.
나는 매우 특이한 성씨를 가진 남자 어른과 두 어린이와 산다. 애는 불만이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늘 성으로 시비를 걸어서다. 3학년이 끝날 무렵, 아이는 기뻐했다.
"이제 걔네랑 다른 반 되면 내 이름으로 말 만드는 애들이 없어질 거 아냐"
내가 말했다.
"니 성으로 놀리는 애들은 스무 살까지 계속 있을 거야."
아이는 절망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난 니 아빠를 만나서 너희 엄마가 된 게 너무 좋아. 성이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 이렇게 좋은데. 그러니 니 성을 미워하지 마. 걔들은 없어지길 기대하지 말고 다루는 법을 익히면 돼."
왕윤은 새롭게 나타난 '저 인간' 동탁 제거에 나서지만 실패한다. 아이도 새 학년이 되니 새로운 '저 인간'을 만났다. 학기초엔 제압에 실패했다. 몇 번의 실패가 쌓이자 아이는 일일이 반응하는 대신 핵폭탄 사이다를 한 번씩 날렸다.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고 실패일까. 아니다. 다룰 수 있으면 된다. 왕윤도 초선을 통해 동탁 다루기 신기술을 익히지 않는가.
다루는 기술은 또 생길 수 있는, 아니 살아있다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다른 문제들을 극복하는 기초체력이 된다.
문제없는 삶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어떤 문제가 와도 다룰 수 있는 강한 어깨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