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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y 20. 2021

우아달의 저주에서 풀리다

바로의 딸, 히스기야의 족보

우아달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줄임말이다. 아이가 저런다고? 싶을 개차반 사례가 우선 나오고 그 아이들이 정말 놀랍게 ‘달라졌어요’를 보여준다. 우아달에서는 아이를 훈육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양육자를 교육해서 개차반을 개화시켰다. 당시 나는 아이가 없었지만 양육자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세월이 흘러 둘째가 걸음마를 했을 무렵, “우리 집은 이쪽으로 가야 돼” 이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갑자기 애가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둥거렸다. 너무 놀랐고 너무 창피했다. 그전까지 길가다 그런 아이를 보면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애가 저리 진상이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리 지르는 아이의 입을 막고 짐짝처럼 아이를 잡아 올려 집에 오는 길에 우아달의 수많은 장면들이 스쳤다. 우아달이 내게 주입시킨 강력한 주문 밑에 깔려버렸다. ‘애가 진상 떠는 건 니 탓이야. 니 탓이야. 니 탓이야...’


   애도 나도 지쳐서 집에 오자마자 뻗었다. 잠든 아이 옆에서 구겨진 마음을 펴보겠다고 성경을 폈다. 출애굽기에서 바로의 딸이 아기 모세를 구했다. 바로는 히브리 아이를 다 죽이라고 했는데 바로의 딸은 아기 모세가 히브리 사람인 거 알면서도 죽이지 않았다. 아비는 잔인한데 딸은 측은지심이 있네? 우아달 공식에 안 맞네?


  서둘러 히스기야를 찾았다. 그의 부모는 누구길래 그리 좋은 왕이 됐지? 싶어서였다. 감사(?)하게도 그의 아비는 아하스 왕이다. 여호와가 가장 싫어하는 이방 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우상 신전을 세워서 악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이은 히스기야는 역대하의 기록에 보면 ‘히스기야 이후에 그와 같은 선한 왕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오예, 우아달 2연패!


   더 감사(?)했던 사람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다. 그는 우아달 버전으로 ‘개차반’이다. 역대하에서는 ‘므낫세의 꼬임에 빠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멸망시킨 이방 민족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였다’라고 말한다. 어라? 아빠는 너무 괜찮은데 아들은 또 왜 이래? 우아달 3연패!


   우아달에서는 아이 성품은 부모를 그대로 반영한다 했지만 바로의 딸도, 히스기야도, 므낫세도 부모와 너무 달랐다. 그들을 보며 길바닥에서 뒹구는 아이가 꼭 내 책임은 아닐지도 몰라!라는 작은 근거를 줬다. 이 근거로 나는 우아달에 깔려 있다가 조금 빠져나왔다.


  물론 부모의 양육태도는 중요하다. 성경인물 몇 명을 근거로 “내가 개차반이어도 애는 잘 돼”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뭐든 중용이 중요하다지. 방임하지도, 죄책감에 쓰러지지도 않는 그 지점을 찾아야 한다.


   바로의 딸도, 아하스에서 므낫세까지 이어지는 계보도 자칫 극단으로 갈 순간에 나를 살리는 이야기가 됐다. 성경은 크든 작든 이렇게 꾸준한 위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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