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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y 25. 2021

평범하게 위대하게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우리 아버지의 형제들처럼 우리에게도 땅을 분배해 주십시오.”(민수기 27장 4절)

   지루해서 몸이 꼬이는 민수기를 읽다가 슬로브핫 자매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뭐지, 민수기판 토지인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주인공 최서희는 최참판댁 마지막 핏줄이다. 아들이 없어서 모든 땅이 친척에게 넘어갈 지경이 되자 최서희는 서류를 조작한다. 과거 최참판네 하인이었으나 지금은 남편이 된 길상이를 최씨가문의 남자로 호적에 올려서 최서희의 두 아들도 최씨로 만든 거다. 조작된 서류 기록은 최서희의 토지문서를 지켰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서 토지의 최서희가 보였다. 그들 모두 본인의 땅을 본인 이름으로 지켜내지 않는가. 최서희는 그의 재력으로 서류를 조작해서 결국 땅을 지켜냈고 슬로브핫의 딸들은 정면승부로 땅을 지킨다. 물론 서희는 홀로 결정한 일이다. 슬로브핫 자매는 어땠을까. 다섯 명의 생각을 모아야 하니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자는 의견도, 나서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을 것이다. 결정이 났어도 막상 나서려 했을 때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뭐든 선구자가 되는 건 미지의 희생을 감당해야 하니까. 여기까지 상상하니 그들에게 일정 농도의 숭고함까지 느껴졌다.






   그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이미 레위기에서도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례들은 있었다. 그러나 ‘보호’받는 것과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보호받음이 수동적이라면 권리 주장은 능동적이다. 과부를 보호하라는 법보다 그가 자립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더 효과적이다. 나의 안위가 타인의 준법정신에 좌우된다면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내 노력으로 나를 지킬 수 있는 발판은 그래서 중요하다. 민수기 시대의 발판은 당연히 분배되는 땅이었다. 그 땅은 나를 지킬 수단이기도 했고 여호와 언약의 증거이기도 했다. 소설 <토지>의 땅이 최서희에게 재산 이상의 의미이자 본인 정체성인 것처럼 말이다.

    그전에도 여자들을 위한 법은 있었겠지만 모세가 콕 찝어서 슬로브핫의 딸들이 이렇게 말했는데 어찌할까요 했을 때 신은 어떤 해석도 끼어들지 못할 만큼 선명한 답을 준다. “그들의 아버지에게 돌아갈 돌아갈 몫을 그들에게 주어 그들의 삼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땅을 소유하게 하라.”라고.

  민주주의가 가장 꽃을 피웠다는 영국에서도 1870년과 1882년에 ‘기혼여성 재산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여자는 자기 명의로는 한 푼도 가질 수 없었다. 모두 남편의 소유였다. 완전한 국가였던 영국도 못하는 일을 국가 형태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에서 했다는 기록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울컥한 지점이었다.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발음도 쉽지 않은 이름들을 불러본다. 평범하지 않은 이름들이 평범함을 떨쳐내고 위대하게 기록되었다. 더욱이 여성인권 개념이 전무한 고대 근동 사회에서 말이다. 그동안의 흘러온 남성 편향 문화가 신의 의도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성경이 꾸준한 위로가 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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