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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y 31. 2021

온라인 수업에 열받았을 때

노아의 방주(1)

“엄마, 나는 소리가 안 들려.”

“엄마, 소리는 들리는데 화면이 안 움직여.”

“엄마, 어쩌구... 엄마, 저쩌구...”


  우리 집이 100평이었나. 오전 10시 반인데, 난 아직 집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갔는데 왜 걸음 수 3천보가 찍히는지. 애도, 부모도, 학교 선생님도 처음 보는 학기 중 온라인 수업의 첫날이다. 학교에 있을 시간에 각자의 방에서 한 명은 노트북, 한 명은 아이패드 앞에 앉아있다. 수업인데 수업 아닌 것 같은, 갈 길이 아주 멀어 보이는 온라인 수업이 시작됐다. 내가 아이들의 진도와 숙제를 확인하는 책임자라니. 도망가고 싶었다.     


  엄마 돌림노래가 줄어들 즈음, 성경을 열었다. 노아의 방주. 어릴 때부터 전래동화 수준으로 듣던 얘기인데 온라인 수업에 지친 상태로 보는 노아의 방주는 달랐다. 노아는 의인이기 전에 농부였다. 농부에게 갑자기 길이 135미터 3층짜리 배를 만들라니. 엄마가 아이 선생님이 되라는 것보다 훨씬 황당한 말이다.   

 노아는 몇 십 년 동안(혹은 해석에 따라 몇 백 년 동안)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든다. 망령 난 노인네라고 하지 않았을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하지만 망령틱한 일을 저리 오래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지 않았을까. 아니, 저 돌은 노인네 신경 쓰지 말자며 아예 잊혀졌을까. 손가락질 받든, 잊혀졌든 노아는 그 세월이 외로웠을 것 같다.           

 

  물리적 혼자보다 더 외로운 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다. 아침의 난리에서도 내가 아주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앞 동 사는 그 엄마도 나랑 비슷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엄마 겸 담임 선생님으로 졸지에 2인분을 떠맡으면서 한숨 쉬던 날, 앞 동 엄마가 외출했다 들어오는 길에 “자기도 애들이랑 동동거리고 있겠지 싶어서 사왔지.” 하면서 내미는 커피 한 잔에 한숨은 조금 작아지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         

  

   노아의 방주를 짓는 동안에 그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혹시 누가 노아를 도와줬는지 등의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서 그저 상상만 해본다. 오랜 시간동안 겪었을 그의 감정을 상상하고 싶은데 그를 상상할수록 외로운 노아만 자꾸 그려졌다. 출근하는 엄마에 비하면 전업 주부 엄마는 낫잖아. 무슨 엄살이야...라는 식의 폄하하는 문장들은 침묵을 강요하는 외로움이었다. 앞 동 엄마의 커피가 아니었으면 더 바닥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들고 보는 노아는 그 커피조차 없어서 더 외로워보였다.      


   농부가 배를 만드는 건 기초부터 배워야 하는 일이지만 초등 숙제는 뭘 대단히 배울 일은 아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며 하는 일을 엄마와 마주앉아 해야 하니 너도 얼마나 재미없겠니. 어머, 갑자기 세팅되는 이해의 간극은 노아의 축복인가.          


  ‘내가 노아보다는 덜 외롭겠다.’ 의 마음, 새롭게 읽히는 노아의 방주는 이게 전부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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