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등교가 시작됐다. 4일을 멋대로 살다가 하루를 규칙적으로 살으라 하면 어른도 어렵겠지. 그래서 등교날 아침은 전쟁이다. 나 혼자 전쟁을 하면 애들의 전쟁을 막아줄 수는 있다. 자고 있는 애 양말을 '내가' 신겨주고 '내가' 옷 입히고 '내가' 밥 떠먹여서 '내가' 차로 가주면 지각할 일 없다. 하지만 안한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노아의 방주 서사가 말한다.
노아는 근 250일을 배에서 지낸다. 홍수가 날 것을 미리 말해주고 배의 크기까지 상세하게 지시하던 신은 그동안 침묵한다. 노아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말해주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도대체 왜? 노아 속 터지라고?
이 생뚱맞은 질문은 더 생뚱맞게 드라마 <도깨비>로 풀었다. 도깨비에서 유덕화(육성재 분)를 빌어 했던 신의 대사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노아가 방주를 짓고 들어간 건 그의 선택이다. 지으라고 했어도 안 지으면 그만이니까. 짓기만 하고 안 들어가도 그만이니까. 요나가 니느웨로 안 갔던 것처럼 말이다. (요나 : 구약에 나오는 인물. 니느웨로 가서 신의 뜻을 전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고 도망감)
선택 이후의 답은 노아가 찾아야했다. “언제 물이 빠질 테니 이만큼 기다려라.” 라고 신이 개입하는 순간, 노아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드라마 대사가, 노아의 방주가 “네가 할 수 있는 건 알아서 좀 해봐.” 라고 읽혔다. 신의 마음을 읽은 노아는 물 빠질 날짜를 요구하는 대신 비둘기를 날렸다.(두번째 날려보낸 비둘기가 나뭇잎을 물고 온 걸 보고 물이 점점 빠지고 있음을 짐작. 세번째 날린 비둘기가 아예 안 돌아와서 물이 완전히 빠졌음을 알아차림)
다 해 줄 수 있지만 해 주지 않는, 그게 신의 마음이고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교문 닫히기 5분 전인데 양말 뒤집어 진걸 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동차 키가 나를 막 잡아 끄는 것 같다. 양말은 그냥 손에 들고 차로 뛰어! 3분이면 교문 앞에 내려줄 수 있어! 그래도 안한다. 너의 비둘기는 스스로 찾거라, 의 마음이다.
파비우스 전략이라는 말이 있다. 파비우스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다. 그가 이끄는 모든 전쟁은 결국에 다 승리였다고. 그래서 이 말은 파비우스처럼 과정이 어쨌든 결국은 이기는 전략을 말한다. 소모전이 있더라도 결과가 승리이면 된다는 뜻이다.
아이를 기다려 주는 건 일종의 파비우스 전략이다. 가방 챙기는데 10분 걸리는 걸 끝까지 기다려 주는 것, 기다리는 동안 내 속은 타들어갈지언정 결국에는 (스스로 하는 걸 배운다는) 승리를 준다는 점에서 파비우스 전략과 비슷하다.
노아의 방주가 내게 말을 건다. 앞으로도 ‘내가 해주고 말지’ 하는 순간은 언제든지 올 거라고. 그때마다 파비우스 전략을 기억하라고. 그거 못하면 서른 살 먹은 자식 회사 조퇴계를 환갑 넘은 엄마가 냈다는 엽기적 소식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사랑하기에 나도 최선을 다했던 마음이라고 치자. 그 마음이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사랑하기에 안 해주는 사랑을 하자고 머릿속에 밑줄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