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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un 08. 2021

세상에서 가장 섹슈얼한 복숭아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퀴어영화인건 알고 있었는데 첫인상은 이탈리아 여행 뽐뿌 영화다. 이태리 북부에서 일주일만 살아봤으면.


   퀴어영화인건 알고 있었는데 첫인상은 공간의 중요함이다. 공간 자체가 사랑을 막 부추긴다. 그게 너무나 영화 같아서 더 영화에 집중한다.


   컷의 이동이 정말 느린데 그 가운데서도 감정 변화를 다 잡아내는 엘리오 때문에 내가 먼저 숨이 넘어간다. 왜때문에 바하곡을 편곡해서, 투박하게, 대역없이, 웃통벗고 치는지. 피아노 치는 남자 싫어하는데 화면으로 보면 주책없이 넋이 나간다.


   올리버는 엘리오 아빠의 연구작업을 도와주러 온 대학원생이다. 만일 엘리오 아빠가 고고학자 대신 수학교수이고 이태리 북부 별장이 아닌 서울 시내 아파트에 살았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림들이다.

   엘리오네 별장을 보며 저 많은 계단, 방, 야외 테이블 누가 관리할거야...하면서도 막상 롱샷을 잡으면 그 안의 풀 한포기라도 되고픈 마음, 주책없이 넋나가는 두번째 포인트다.


   대한민국의 획일적인 공간문화가 창의력을 막는다는 말에 '안 획일적이면 그 다양한 청소는 누가?'이러며 코웃음쳤던 과거의 나님은 반성하라.


   아, 수영장 등록에 맨날 실패하는 나님도 반성하라. 수영 배우고 싶은 마음도 부추기는 영화다. 얘네는 그냥 동네 강가에 훌렁 뛰어 들어가 수영한다. 튀는 물방울만큼 생명력이 팔딱거린다. 도시의 락스물 수영장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풍경,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도 당장 여행가방을 싸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다.

   게이 영화랬는데 그냥 사랑영화로 읽혔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보내고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마저 사랑으로 읽혔다. 어느 아들이 남친이랑 헤어진게 속상할 때 울면서 엄마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사랑 말고 할말이 없다.


   아들의 전화를 받고 단숨에 데리러 온 엄마의 사랑 영화로 읽혔다. 우는 아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은 엄마 역시 사랑 말고 뭐라고 할까.

   우울한 아들에게 너무 빨리 우울을 털지 말고 깊게 들여다보고 즐기라는, 특별한 감정이라고 more friendship 이라고 말하는 엘리오 아빠의 사랑 영화로 읽혔다. 결혼한다는 올리버 전화를 받고 울고 있는 아들을 그저 뒤에서 바라봐주는 부모의 사랑영화로 읽혔다.

   내가 아는 사랑과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이 분명히 다른데 그게 또 사랑이 아니면 달리 할말이 없어서 결국 사랑 영화가 되어 버린다.


   영화를 정말 영화답게 만드는, 허투로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는, 그러면서 여백도 충분한, 퀴어가 퀴어로 보이지 않는 신비함이 이탈리아 북부 시골이라는 공간의 힘을 받는다.


   아, 물론 복숭아씬은 정말 흐억...곧 복숭아 철이 될텐데 볼 때마다 생각날 거 같다. 세상에서 가장 섹슈얼한 복숭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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