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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Aug 04. 2021

뜨거움이 필요해

소울메이트와 올림픽

 

그를 만난 지 1년 남짓이지만 만나자마자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은 것인가.     


식기세척기님이 식기세척을 못했다. 기름기가 그대로 남았고 자동건조가 안됐다. 다급하게 기사님을 모셔왔다. 제 소울메이트를 살려주세요. 기사님은 5분 만에 진단을 내렸다. 물을 뜨겁게 데워주는 모터만 바꾸면 된다고. 그전까지의 내 고민은 기사님의 한마디에 빗자루로 쓸어버린 듯 사라졌다. 뜨거움이 필요했구나. 뜨거움이 살리는구나.      


올림픽으로 더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있다. 여자배구 8강과 4강전이 뜨거웠고 노메달이어도 좋다는 다이빙선수 우하람의 뜨거움이 감격스러웠다.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뜨겁다는 양궁도 빠질 수 없지.      


날이 더워지면서 그저 모든 게 싫고 싱겁고 귀찮았다. 미리 약속되었던 일들만 간신히 하는 날들, 몇 개만 쳐내고 주로 바닥과 평행을 이루는 날을 쌓았다. 소울메이트의 뜨거움과 올림픽의 뜨거움이 겹치니 ‘나는 안 할래.’가 ‘나만 못하네.’로 급격하게 도약했다. 이 도약은 너무 급해서 필연적으로 자기 비하를 부른다. 이 마음을 그대로 두면 너무 오래 살아남아 나를 갉아먹는 걸 몇 번 봤기에 바닥과 평행한 나를 일단 수직으로 일으켰다.      


건당 원고료 받고 하던 일의 계약기간이 끝났다. 기간 연장도 귀찮고 별로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를 쓰는 것도 싫어서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었다. 바닥과 수직이 됐던 날, 담당자와의 협상으로 건당 단가를 올렸다. 숫자로 환기되는 삶이었나. 갑자기 뜨겁게 살자! 의 마음이 되어버린다. 오래가지 않겠지만.      


소울메이트가 윙윙 돌더니 턱, 하고 문이 열린다. 열린 문 사이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의 뜨거움이 그릇의 더러움을 지우고 광택을 가져왔겠지. 올림픽 선수들의 뜨거움은 비인기 종목도 후원하자는 sns의 연대를 만들어냈다. 나의 뜨거움도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자기비하에서 나왔으니 일단은 다 된 걸로. 나의 소울메이트가 부활하셨으니 그걸로 더 된 걸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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