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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09. 2021

언니가 망했다고?

죽으면 죽으리다


구약성서 중 에스더서는 ‘죽으면 죽으리다’가 가장 유명하다. 주인공인 에스더가 한 말이다. 말은 에스더가 먼저 했지만 이 행동을 먼저 했던 여자가 있다. 물론 그러다 망하긴 했지만.


   에스더서 초반은 당시 황제였던 크셀크세스 황제와 황후 와스디 이야기다. 황제는 잔치 마지막 날, 황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해 불렀고 황후는 거절했다. 황제가 부르는데도 안 간 배짱이야 말로 죽으면 죽으리다의 원조가 아닌가.


   혹자는 이 사건으로 와스디가 폐위됐고 에스더가 황후가 되었기에 와스디는 에스더를 위한 큰 그림일 뿐이라 말한다. 그랬다면 굳이 한 장을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전 황후가 쫓겨나고 에스더가 황후가 됐다...라고 한 줄로 요약하면 됐겠지.


 여튼 여자가 남자의 종속물인 시대에 부름을 거절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 관습을 깼다는 얘긴데, 그런 와스디가 그저 폐위 황후로만 묻혀야 할까.




   와스디의 속마음을 상상해 본다. 와스디는 평등한 부부를 꿈꿨던 게 아닐까. 그 시절의 평등한 부부, 무려 황제와의 평등은 거의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겠지만 어느 시대든 사회가 일보 진전하는 데는 그런 무모한 상상력이 꼭 필요했다.


   행여 내가 이미 있는 해석과 동떨어진 상상을 하는 건지 가까운 목회자님께 여쭤봤다. 현대 성서주석과 wbc를 근거로 그에 대한 다른 해석 자체가 없단다. 신학자들도 별 관심이 없었나 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마디, “에스더서는 신이 한 번도 안 나오는 거 알고 계세요?”  


   다시 읽었다. 정말 안 나온다. 무대 위의 메이저보다 무대 뒤의 마이너도 가치 있다는 것을 신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한 번도 안 나오는데 어디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무대든지 간에 무대 뒤 숨은 사람들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도 우리의 관심은 오직 메이저다. 성경 속 신은 결코 마이너가 될 수 없겠지만 스스로 무대 뒤를 지킨다. 신도 이럴진대 우리도 마이너를 더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와스디는 에스더서의 대표격 마이너가 아닐까.


   죽으면 죽으리다의 에스더는 나와 너무 다른 사람 같아서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불의를 아주 잘 참을 수 있고 대의를 위해 비장하기 전에 미리 도망갈 사람이라 그렇다.  


그런 내게 에스더서 이면의 마이너 마음과 나의 상상이 겹쳐지면 와스디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위로 천 년쯤은 언니로 퉁칠 만큼.


   “언니, 망한 거 아니야.
   완전 멋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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