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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Oct 07. 2021

멋있으면 다 언니 ver.2

사사기의 야엘

사사기 4-5장에 걸쳐 야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전쟁이 났을 때 적장의 머리에 말뚝을 박아 죽인, 무시무시한 여자였다. 여선지자 드보라는 야엘을 5장에서 대놓고 칭찬한다. 


야엘은 이방사람이었다. 야엘의 천막에 들어온 시스라는 엄밀히 말하면 야엘과 같은 편이다. 같은 편을 죽였으니 배신자라는 말을 들을 법도 한데 배신자보다 음란한 여인이라는 해석을 먼저 봤다. 


광야에서는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관습법이 있긴 있지만 성별을 엄격하게 구분한단다. 남자 나그네는 꼭 남자의 천막에서만 머물러야 한다는. 그럼 뭐야. 시스라가 똘기를 부린 건가. 야엘이 색기를 부린 건가. 




사사기 인접 본문에서 야엘은 영웅으로 환영받는다(5:24-27) 게다가 야엘의 행위를 신의 계획이라고도 말한다(4:23) 그러면 시스라가 똘기라는 건데. 


나그네에게 호의를 베푸는 관습법을 악의적으로 위반한 쪽은 시스라였다. 시스라가 제정신이라면 야엘이 아니라 야엘 남편 헤벨에게 갔어야 한다. 시스라가 야엘의 천막으로 간 건 헤벨을 모욕하고 야엘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현대성서주석의 매튜스(Victor Matthews)가 지적한다. 


야엘은 시스라에게 호의를 베푼다. 시스라가 정상이라면(정상이라면 야엘의 천막에 가지도 않았겠지만) 야엘의 호의를 거절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것저것 요구를 한다.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했지, 그 나그네가 ‘손님은 왕이다’의 손님 자리에 오를 순 없는데도 말이다. 


시스라는 마실 것을 가져오라고 하고 장막에 입구에 서서 자신을 지키라고 한다. 자신을 지키라는 요구는 야엘에게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다. 집에 누가 있는지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시스라가 집에 있음으로 야엘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거 아닌가.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시스라다. 


야엘은 마실 것을 가져오라는 요구에 우유를 갖다 준다. 이미 관습법을 어기고 무례히 행동하는 시스라에게 대놓고 화를 내지 않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단한 사람에게 따뜻한 우유를 내어주고 잠자리를 봐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푹 자라는 뜻이다. 시스라는 의심 없이 이 권리(인 줄 착각한)를 받아들이고 깊은 잠에 빠진다. 시스라 자신이 손님과 주인 사이에 지켜야 할 언약의 법을 전부 위반했다는 것은 생각도 안 한다. 한 나라의 장군이라는 작자가 어찌 이리 미련한지. 


시스라의 무례함에 정면으로 맞섰다면 무장한 시스라에게 당했을지도 모르는 터. 그렇다고 벌벌 떨며 그저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무기력하게 기다리지도 않았다. 야엘은 적절하고 현명하게 그와 그 가족의 명예를 위협하는 사람이 누군지 분명히 깨달았다. 시스라가 야엘 천막에서 잘 자고 잘 갔더라면 헤벨의 명예에도 누를 끼쳤을지 모르니 말이다.




싸움을 진짜 잘하는 사람은 이기는 싸움만 한다고 한다. 야엘은 그래서 멋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싸움으로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성서에 이름을 남겼으니 말이다. 천 년 위까지는 다 언니, 멋있으면 언니의 이론에 따라 따라가고 싶은 언니 한 명이 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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