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 설교 테이프가 집에서 자주 재생됐다. 나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모든 설교가 요한 3서 1장 2절로 끝난다는 것.
“사랑하는 자들아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중간까지도 다 다른 이야기 같은데 마지막은 항상 깔때기를 통과한 듯 저 한 구절이 쪼르륵 흘러나오는 게 신기했다. 할머니는 그게 목사님의 통찰이라고 했다. 그런 방식의 통찰을 정지우 작가님의 신작에서 또 본다.
초반에는 글 자체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곧 삶으로 넘어간다. 다양한 방향으로 뻗은 삶이 마지막엔 ‘글쓰기의 다정함’ 혹은 ‘친밀함’ 혹은 ‘가치 있음’ 등의 탐나는 한 구절로 쪼르륵 흘러나왔다. 이토록 다양한 같음이 가능하다니, 정지우 님 버전의 요한 3서인가.
정말 요한지우 3서일지도 모른다. 어느 챕터에서 '함께 쓰는 이'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이 지탱해주는 강건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글을 꼼꼼히 봐주는 친구들이 있다. 어느 때는 본문보다 합평이 더 많을 정도다. 그들이 문장 너머의 것들을 찬찬히 살피는 통에 나는 구조부터 뜯어고쳐쓸 때도 많다. 시험지라면 빨간 줄 소나기 이상의 태풍급이다. 황폐함 대신 나의 시선을 키워주는 태풍이라고 할까.
‘관념으로 도피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대상 곁에 살아있기 위하여’
책의 이 구절에서 그들을 떠올렸다.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없는 내가 은근슬쩍 관념으로 도피할 때 그걸 알아보고 대상 곁에 착 붙어있게 나를 끌어당기는 이들이었다. 도망가지 못한 나는 괴로웠지만 결과적으로 대상 곁에 더 선명하게 살아남았다. 다음번 태풍은 더 기쁘게 맞겠노라는 다짐을 했다.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뭐라도 써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든다. 쓰기의 막막함을 작가의 언어로 어르고 달랬기 때문이다. 읽은 두 시간의 끝이 한없이 둥그렇고 부드러웠다.
작가는 깔때기를 만들었고, 깔때기 끝에서 쪼르륵 따라 나온 작은 빗방울이 어느새 독자를 흠뻑 적신다. 독자는 자기가 젖은 줄도 모르고 그가 이끄는 대로 빈 종이 앞에 앉는다. 글쓰기에 대해 그리 심각했던 본인을 어느새 잊은 채. 그렇다면 그의 책 제목은 너무 정확하지 않은가.
#우리는_글쓰기를_너무_심각하게_생각하지
#정지우신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