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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꼰대력은 이 글로 확인됩니다

스파이더맨과 킹스맨과 꼰대

by 음감


겨울방학이 가까워온다. 조급한 마음에 (애들 방학 전에 뭐라도 해야 해!!) 영화관을 연달아 갔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둘을 굳이 공통점으로 묶자면 영웅이나 히어로 정도로 할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꼰대력’이라고 하겠다.


스파이더맨의 피터와 스티븐, 킹스맨의 옥스퍼드 경과 콘래드. 양 쪽 모두 신구 세대의 대표인물로 나온다. 신세대 피터와 콘래드가 구세대 스티븐과 옥스퍼드의 “쫌! 하지 말라고”를 가뿐히 무시하는 바람에 스토리가 전개된다.


나는 이미 피터나 콘래드보다 스티븐과 옥스퍼드 경에 가깝다. 영화 초반에는 나 역시 “쫌!”을 외치긴 했다. 결국 “쫌!”을 안 들은 피터는 다정도 병이라 차원의 결계를 흔들었고 콘래드는 신념이라 쓰고 무모함이라 잃는 고집으로 목숨을 잃는다.


“거봐라… 왜 그랬니…”가 나오긴 하지만 피터와 콘래드가 ‘왜 그러’지 않았으면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마블판이 더 커질 수 없으며 킹스맨의 시작이 될 수도 없었겠다. 꼰대가 보기에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삽질인데 결국 세상을 바꾼다.


꼰대들이 신세대에게 품는 불신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점토판에서도 “제발 철 좀 들어라. 나약하고 철없는 요즘 것들아”라고 혀를 차는 기록이 남아있다. 중세 시대 스페인 사제 알바루스 펠라기우스는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온다”라고 한탄했다. 그러니 스티븐의, 옥스퍼드 경의, 나의 꼰대력은 적어도 일시적인 감정은 아닌 거다!




크리스마스이브다. 애들은 종업식이라며 신난다고 엉덩이 흔들며 나갔다. 나는 멘탈이 흔들린다. 다음 주부터 나의 고요한 시간은 없는 거구나, 애들이랑 오래 붙어있으면 꼰대력으로 또 싸울 텐데 어쩌지… 의 걱정이 앞선다. 수메르 점토판과 중세 사제는 세계사 시험지에만 있는 말인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얘네에게도 위로를 받는다. 나의 오늘 걱정을 수메르 점토판이 다독이니 말이다.


기원전부터 내려온 마음을 내가 어찌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러니 아예 안 하겠어!라고 다짐하진 말고(어차피 불가능) ‘적당히 하겠어’ 정도로 타협하면 된다고.


아이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나의 ‘적당한’ 꼰대력을 아이들이 ‘적당히’ 무시해서 본인의 변화를 ‘안전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변화와 안전함이 공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파이더맨이나 킹스맨처럼 막 세계를 구하라는 거 아니잖아. 그저 방학 동안 이 가정이 감당할 만한 변화 안에서 안온하기를.




이 글은 방학 시작 날에 조울증 증세를 보이는 어느 학부모의 불안한 정서상태를 대변합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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