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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an 11. 2022

그 아파트만 싼 이유

모세의 배경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00 아파트 알아? 저번 거기보다 신축인데 싸. 여기 어때?”

“어... 배정되는 초등학교가 비선호라서…”


이것은 먼저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정보 전달인가, 선입견 전달인가. 복잡해지는 머리와는 상관없이 나는 꼭 어느 부동산 카페의 댓글처럼 읊어대고 있었다.


전화를 끊었다. 그 집 외동딸의 첫 학교이니 엄마가 알 건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나를 합리화했다. 그러다 모세가 생각났다.




모세는 노예로 태어나 죽을 뻔 했지만 극적으로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되어 왕궁에서 살았다. 방금 전의 통화와 연결해 본다면 그곳은 최고의 학군이었다.


왕궁은 필요하고 좋은 것들이 차고 넘쳤을 것이다. 광야는 필요한 건 부족하고 불필요한 건 놀랍게 넘쳤을 것이다. 열악하다는 표현마저 과소비처럼 느껴질 만큼의 열악함. 극한 추위나 더위, 굶주림 등 교육은커녕 생사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곳이 광야다.


모세는 왕궁에서 홧김에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간다. 왕궁에서도 감정을 조절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나 보다. 그의 배움은 광야에 있었다. 그곳에서 신을 만났고 훈련받았고 민족의 지도자가 됐다. 지도자를 배출한 학군은 왕궁이 아니라 광야였다. 일반적인 학군의 공식이 제대로 깨진다.


아이들의 삐약이 시절이 끝나자 학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수많은 변수를 처리하는 자체가 삶이라지만 학군은 어쩐지 흔들리지 않는 상수가 될 거 같았다. 모세를 보며 과연 학군이 상수의 범위에 들어가는지 다시 생각한다.


아니, 인생 자체에 상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지 생각한다. 내 마음도 수시로 널뛰는데 내 밖의 일 중에서 상수로 고정되는 게 있을까. 결국 상수이길 바라는 것들이 변수였음을 확인하며 가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학군에 최고의 소아청소년 정신과가 모여있다는 기사가 이를 반증한다.


그 아파트만 싼 이유가 학군 때문이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학군도 변수야. 어디 있든 본인이 잘하면 돼’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도 안 하려고 한다. 광야와 왕궁처럼 눈에 보이는 공간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잊지 않는, 그 마음만 간직하기로 했다. 통화했던 지인이 정말 우리 동네로 온다면 부동산 댓글스러운 말 대신 맛있는 점심을 사주며 그의 피곤한 마음을 더 위로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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